칼럼/사설 [경기시론] 그린 뉴딜(Green New-Deal)이 또 다른 플라스틱 프리(Plastic-free…
플라스틱 빨대로 인해 죽은 거북이 사진 한 장이 던진 반향은 컸다. 너도나도 플라스틱 프리를 선언하며 플라스틱으로 만든 텀블러 사진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다. 언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느새 플라스틱 프리 선언은 가장 힙한 지구적인 유행이 되어 버렸다. 좋은 일이다. 좋은 일이긴 한데,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진다. 과연 우리는 플라스틱 프리를 선언할 수 있을까? 이렇게 회의적으로 묻는 까닭은 플라스틱이 만들어진 배경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러닉하게도 현재 거북이를 죽인다는 플라스틱은 코끼리와 거북이를 살리기 위해 발명되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인 1800년대 중반의 일이다. 당시 미국에선 당구가 국민적 인기를 끌고 있었다. 당구에 필수적인 당구공은 전량 상아로 만들어졌다. 당구공뿐만이 아니었다. 피아노 건반, 체스말 등 상아에 대한 수요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거북이 등껍질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아직도 귀갑이라는 이름으로 고급 안경테 등에 사용되고 있으니, 당시엔 두말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상아와 거북이 등껍질 수요를 따라잡기 위해 사람들은 이 두 동물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이를 보다 못한 뉴욕의 당구공 회사가 1863년, 상아 대체물 발명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