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산이 버티고 섰다. 세찬 물살이 앞길을 가로막았다. 갈 길 바쁜 나그네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다시 산그늘 속으로 들어간다. 아득한 길을 탓해봤자 허망한 일, 묵묵히 신발끈을 동여맬 뿐이다. 한미 정상회담을 보며 들었던 느낌이었다. 부동산문제, 검찰개혁 문제 등은 고구마를 입에 털어 넣은 듯 답답하다가도 1년 남은 임기에 그래도 한반도의 숨통을 트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보니 짠한 마음이 들었다. 정상회담은 역대급 성과였다. 내 기억에 정상회담에서 이런 굵직한 합의가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꽉 막혔던 남북-북미회담을 뚫기 위해 판문점선언과 싱가폴 공동성명으로 출발선을 다시 맞춰놓았다. 백악관을 어지간히 설득했을 것이다. 또 백신 공동생산이나 달 탐사계획 참여도 반갑다. 미사일지침 완전해제는 상상조차 못했을만치 미래지향적이다. 이로써 대한민국은 안보는 물론이고 우주로까지 시야를 넓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대한민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가 과거보다 진심어린 예우와 환대를 느낄 수 있었던 점이었다. 그것은 높아진 한국의 국제적 위상에 기인했겠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정부의 균형 잡힌 외교가 지렛대 역할을 했을 것이 틀림없다.
오랜만에 야권의 공식선거 승리가 목전에 와있던 선거 며칠 전, “보궐선거에서 야권이 이기면 뭘 가장 뭘 하고 싶을까?”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가장 많은 사람이 비슷하게 예상한 것은 “김어준을 TBS에서 퇴출시키려 하지 않을까?”였다. 아니나 다를까 선거승리 후 ‘김어준원정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야당이나 시민단체가 고발하고 검찰이 압수수색을 하던 순서에 이번은 감사원이 끼어들었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익히 보아오던 패턴이다. 장단에 추임새가 빠지면 허전하듯이 언론도 신이 났다. 처음엔 고액출연료로 논란으로 대중의 위화감을 자극하더니 법인명의 수령을 두고 바람을 잡는 꼴이 ‘김어준게이트’를 학수고대 하는 모양새다. 어쩌다 김어준은 이토록 무림의 공적이 되었을까? 야권과 보수언론에서는 지속적으로 김어준의 정치편향성을 문제 삼아왔다. 허구한 날 정부를 씹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우는 종편이나, 아예 유가부수를 조작해 정부지원 광고홍보비를 과다수령해온 보수언론들이 정치편향성을 거론하다니.. 마치 미얀마 쿠데타군부가 준법과 질서를 외치는 것과 같은 당혹감을 느낀다. 하긴 미얀마군부가 시민들과 내전 중이라면 우리는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전쟁 중인데
그해 겨울은 모질게 추웠다. 물어물어 겨우 찾아간 여수 돌산대교에서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칼바람을 맞으며 이젠 더 이상 우리 관계에 희망이 남아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해가 저무는 돌산대교에서 오랜 인연을 이어오던 연인을 그렇게 떠나보냈다. 80년대부터 시작된 수배생활이 4년차에 접어드는 시절이었다. 그 겨울이 지나고 몇 달 후 나는 전해 들었다. 그녀는 나랑 헤어지자 말자 처음 맞선을 본 남자와 한 달 만에 결혼해버렸다는 사실을.. 나에겐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당시의 나는 사람 마음이 변했다는 자체를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었다. 세월이 흐른 후에야 깨달았다. 그녀가 떠난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이었음을.. 희망이 없으면 흔들림이 당연한 것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겠냐고.. 시간이 흘려 YS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신분정리가 되면서 나는 철도기관사가 되었다. 처음 기관차를 타던 90년대 지방의 철길 건널목에는 차단기도 없는 곳이 많았다. 반면에 어떤 건널목은 차단기에 건널목 안내원까지 근무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건널목에는 대부분 기관사들끼리 부르는 이름이 붙어있었다. 예를 들어 ‘김철*건널목’, ‘박영*건널목’ 식으로.. 알고
아.. 나도 투표하고 싶다. 보궐선거 없는 지역에 살면서 지금 서울과 부산의 선거전 양상을 보노라면 참담하다 못해 화가 난다. 이유는 첫째로, 후보가 빤히 보이는 거짓말을 너무 낮 두껍게 한다. “상속받은 땅의 존재조차 몰랐다”는 사람이 몇 번이나 말을 바꾸다가 이제 와서 “그 땅의 측량현장에 내가 있었다 없었다가 중요한게 아니다”라니 이게 무슨 해괴한 말인가? 문정권의 집값상승은 대역죄라고 몰아세우던 양반이 취임하면 일주일 안에 재건축, 재개발을 풀겠다니, 투기광풍을 기대하고 그 지역에 투자를 해놓지 않은 이상 도저히 내뱉기 어려운 말이 아닌가? 부산은 또 어떤가? 오죽했으면 네티즌들이 박형준후보의 재산을 “1일1땅”으로 찾아내고 있는 실태를 일러 박후보가 부산시장에 출마한 이유는 ‘자기도 모르는 숨겨진 재산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한탄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급기야 보도된 박형준후보의 관련재산을 코스로 이어서 방문하는 “탐욕의 성지 순례단”까지 등장했다. 이뿐인가? 박형준후보의 딸 홍대미대 입시청탁 건에 대한 폭로를 보면 대한민국을 뒤흔든 조국 전 장관 딸의 표창장은 참으로 소박하게 비칠 지경이다. 두 번째로 화가 나는 것은, 이런 거짓부렁에도 불구하
청년은 “학살중단! 군부퇴진!”이란 피켓을 들고 있었다. 마스크 위 청년의 눈은 맑고 깊었다. “고향 가족들 걱정에 많이 힘들겠어요”라고 말을 던지자 눈동자에 금방 물기가 맺혔다. 7일 창원시청 앞 미얀마민주화투쟁 연대집회에서 만난 청년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미얀마교민들과 창원시민들이 광장에 띄엄띄엄 둥글게 섰다. 그야말로 국제집회였다. 교민들은 ‘미얀마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 알려진 민중가요 ‘예찌비’(Thway Thitsar)를 불렀다. “형제자매들이여. 단결하고 또 단결하자. 우리는 피로 역사를 썼다..”로 시작하는 내용으로 3천명이 희생된 88년 투쟁을 기리는 상징노래이다. 집회에 참여한 창원시민들은 답가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군부의 탄압을 피해 떠돌다 94년 한국으로 망명한 '한·미얀마연대'의 조우모아대표는 한국어와 미얀마어로 번갈아 말했다. “버마는 세 번의 쿠데타가 있었고, 이번이 세 번째 저항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나눠주세요. 도와주세요”라며 애타게 호소했다. 이들은 전날 문재인대통령이 “군부의 폭력진압을 규탄하고 민주주의 회복을 간절히 바란다”는 입장을 밝힌 것에 대해서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시민들의 연대사도 미얀마어로 통역
동네 주변에 광려천이란 아담한 자연하천이 있다. 산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사시사철 흐르고, 천연기념물 수달과 따오기도 사는 하천으로 주민들에겐 귀한 쉼터이다. 도시 주변의 자연하천이 대개 그렇듯이 생활쓰레기로 몸살을 앓는다. 버려진 쓰레기가 눈에 거슬려 4년 전부터 산책할 때마다 마대자루에 집게로 줍기 시작했다. 재미삼아 이 짓을 300회 가까이 하게 되니 환경에 관심있는 주민들이 하나둘 만났고.. 급기야 ‘줍다’와 ‘조깅’을 합해 ‘줍깅’을 같이 해보자며 ‘광려천을 걸으며 줍는 사람들’이란 모임까지 생겼다. 그러나 줍깅을 반복해도 쓰레기는 재생산 될 뿐 결코 없어지진 않았다. “어떻게 하면 광려천에서 쓰레기를 없앨 수 있을까?” 어디 환경문제 뿐이랴. 세상일도 비슷할 터. 촛불혁명을 디딤돌로 들어선 문재인 정권에게 사람들이 원한 것은 ‘적폐청산!’, 대한민국의 묵은 쓰레기를 치워달라는 것이었다. 재벌과 검찰, 사법부, 언론 등의 기득권집단들에 맞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요구였다. 그러나 시민들의 간절한 바램은 눈앞에서 검찰의 벽에 막히고, 사법부의 노골적인 비호에 꺾여 나갔다. 피감기관으로부터 수천억원의 공사를 수주해 최악의 이해충돌 논란을 일으킨 박덕
“문화예술·체육인 건전화사업 계획” 이 제목을 보고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제목의 단어만 보면 1980년 전두환이 만든 삼청교육대에서나 쓸만한 표현이 아닌가? 왠걸, 이 제목은 2010년 국정원이 만든 활동계획이었다. 이번에 국정원이 시민단체 ‘내놔라 내파일 시민행동’에 공개한 민간인 사찰자료 중 일부를 경기신문이 단독보도한 내용을 보면 그 내용의 꼼꼼함이라니.. 느닷없이 어느 야당 서울시장 후보의 “독하게 섬세하게”란 구호가 떠올랐다. ‘좌파 연예인의 방송활동 차단 강화, 정부비판 성향 인물 견제 방안 강구’, ‘비리를 적출, 사회적 공분 유도’ 등의 문구를 보면서도 나는 전혀 놀랍지 않았다. 아니, 거꾸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이 "이런 짓을 저지를줄 몰랐단 말인가?" 그렇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그렇게 모은 사찰자료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정권에 비판적인 사람들의 밥줄을 끊으려 했다. 사찰이 국가안보를 위해선지 정권의 보위를 위해선지는 구분할 필요조차 없었다. 그들에겐 정권이 곧 국가였으니깐 말이다. 그냥 ‘국정원이 국정원했을 뿐’인 사실을 새삼 확인하며 나는 익숙한 참담함에서 배어나오는 실소를 머금었다. 이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아마도
새해 1일이 되자 국민의 당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독재공화국으로 만든 ‘폭주기관차’를 반드시 멈춰 세우겠다”고 올 한해의 각오를 밝혔다. 사람마다 직업상 특정용어에 민감한 경우가 있다. 나의 경우 ‘기관차’라는 단어만 들으면 귀가 쫑긋 서는데 그냥 기관차도 아니고 폭주기관차라니.. 얼마 전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첨예하게 부딪칠 때 언론마다 “브레이크 없이 마주달리는 폭주기관차처럼..”이라고 적었다. 맙소사.. 이제는 브레이크조차 없다니.. 기관사 입장에서 상상만 해도 끔찍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과연 ‘마주 달리는 폭주기관차’가 가능할까? (현실에서는 보안장치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만일 억지로라도 만든다면 무조건 둘 중의 하나는 신호제어를 아예 무시해야 할 것이다. 누가 무시했을까? 의미상 ‘신호제어’를 ‘지휘감독’으로 바꾼다면, 검찰총장이 장관의 정지신호를 무시하고 혼자 돌진 해버리지 않는 다음에야 이런 상황이 생길 수조차 없을 것이다. 그럼 분명해진다. 현실에서 ‘마주달리는 폭주기관차’는 없다. 신호제어에 따르지 않는 ‘미친 폭주기관사’가 있을 뿐이다. 폭주기관사는 어떤 때는 검찰이란 집단으로, 다른 때는 법조카르텔에
검찰개혁은 국민주권의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해온 검·경수사권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의 검찰개혁이 방향을 잃었다. 벼랑 끝에 몰린 검찰개혁을 갈망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시리즈로 싣는다. [편집자 주] 연일 뉴스는 윤석열, 추미애의 아수라장 같은 이야기뿐이다. 채널마다 선정적인 기사는 물론이고 마치 이종격투기 중계하듯이 흥분된 해설에 추측을 더하니 이제는 뉴스가 아니라 거의 소음공해 수준인데.. 이렇다보니 올 한 해를 되돌아보면 코로나와 검찰 외에 딱히 기억날게 없지 싶다. 좀비 같은 전염병 코로나는 그래도 방역당국의 지침을 지키면 언젠가 백신과 치료제도 개발되어 극복되리라는 희망이라도 있는데, 대통령도 안중에 없는 듯이 여기는 작금의 검찰사태를 보노라면 “대한민국에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 검찰이구나”하는 두려움마저 들 정도이다. 오죽하면 며칠 전 추미애 장관조차 “검찰당이라 불릴만치 정치세력화된 검찰이 민주적 통제 제도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다. 이 백척간두에서 살 떨리는 무서움과 공포를 느낀다”고 말할 정도이니.. 이런 공포는 코로나처럼 전염되고 증폭된다. 검찰이 백주대낮에 짜장시켜 먹으며 조국 전 장관 가족의 영혼까지 탈탈 털어낼 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