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2학년 담임을 할 때의 일이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도서실서 책에 쪽지를 숨겨 놓고 찾는 술래잡기를 종종 하고 놀았던 모양이다. 도서실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교실에 있던 나는 알 수 없었고, 사서 선생님께서 나에게 지도를 부탁하고 나서야 어린이들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물론 9살이었던 친구들은 도서실에서 조용히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계속 뛰어 놀았다. 결국 뛰어다닌 아이들이 2주 동안 도서실 출입이 금지되면서 책 읽는 공간은 평화를 되찾았다. 여기까지는 있을 법한 내용의 이야기들이다. 예상치 못했던 건 학부모의 반응이었다. 부모로서 아이가 도서실에 출입을 못한다는 사실이 화가 났을 수 있다. 화가 난 학부모가 보인 첫 번째 반응은 ‘왜 도서실에서 뛰면 안 되냐?’는 것이었다. 뭐라고 답할 말이 없어서 가만히 있자, 그럼 아이들은 어디에서 뛰어놀아야 하냐고 재차 물었다. 운동장에서 뛰어 놀아야 한다는 나의 답에 2학년은 왜 애들이 뛸 수 있는 체육이 없냐며 크게 화를 냈다. ‘체육이 교과서가 없긴 없는데요. 실제로 없는 건 아닙니다.’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며칠 전에 나온 <초등학교 1~2학년에 체육 수업 없는 나라는 대
권위주의적 정치문화가 지배했던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정부에서 여당의 총재와 대선 후보는 경선 없이 추대되었다. 야당에서는 대선후보 및 당 총재(대표) 경선이 이루어졌다. 오랜 기간 대통령은 여당의 총재였다. 당대표 경선은 김대중 대통령의 여당 총재직 사임(2001) 이후 제도화되었다. 정당 민주주의의 신장을 위한 당원의 권리 확대와 공직선거 후보자의 공정한 추천 등이 입법되었다. 정당법에 ‘당원 등에 당직자 선거권 부여’(2000), ‘당 대표자 선출 당원 등 매수행위 금지·처벌’(2002), ‘공직선거후보자 추천 위한 당내 경선 제도화 및 선관위 위탁’, ‘경선(당대표 경선 제외) 관련 선관위에 범죄 조사권 부여’, ‘당내 경선등 위반 범죄 처벌’(2004), 공직선거 후보자 경선은 공직선거법으로. 당대표 경선은 정당법으로 분리(2005), ‘당대표 경선 사무 선관위 위탁’(2008)과, 정치자금에관한법률에 ’당대표경선후보자 후원회‘(2004) 등이 규정되었다. 특수한 권력집단인 정당에서 공직선거 후보자의 추천, 의사 결정,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당 대표 등 지도부의 경선이 위법 행위로 여·야 정치인들이 문제가 되었다. 정당의 오랜 폐습의 잔존 상태에서
지난해 말 사과 한 개 가격이 1만원이 넘어가면서 국민들을 불안케 했다. 사과 값이 오르면서 배와 귤 등의 가격이 연쇄적으로 올랐다. 원인은 봄철 이상저온과 여름철 가뭄과 폭염, 호우 등 날씨 때문인데, 이로 인해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로 각종 농작물의 생산량이 급감해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기후플레이션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러한 기후플레이션이 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전 세계 코코아 공급량의 약 75%를 담당하는 서아프리카에서는 지난해 발생한 엘니뇨로 인한 폭우와 폭염으로 코코아 수확량이 급감했다. 엘리뇨는 설탕과 올리브유, 커피 등의 가격을 올리면서 과자, 치킨, 햄버거, 피자 등의 가격을 상승시켰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음식들의 가격 줄인상의 근본 원인이 기후플레이션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기후에 대한 대처방안은 일시적인 처방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따라서 세계적인 탄소감축 노력과 함께 우리 스스로 안전한 먹거리를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방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6%인데, 이는 가축이 먹는 사료를 뺀 수치이다. 가축 사료까지 포함한 우리나라 곡물 자급률은 20%이다. 실질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고딕 양식의 경이로운 수도원 몽생미셸! 이곳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인기가 높다. 지난 5월 19일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3만 300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4㎢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에 왜 이리 많은 사람이 모여 든 걸까? 신비롭고 경이로운 몽생미셸의 매력 때문이다. 이곳은 708년 세워졌다. 전설에 따르면 생 미셸 대천사가 오베르(Aubert) 주교에게 나타나 자신의 이름으로 성소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주교는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러자 대천사가 다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빛의 손가락으로 주교의 머리를 만졌고 두개골에는 곧 구멍이 뚫렸다. 주교는 대천사의 존재를 확신하고 건물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 후 966년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이곳을 점령했다. 이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 공사를 60년간 지속했고, 수세기에 걸쳐 이 섬의 화강암 위에 여러 건물을 지었다. 그 결과 몽생미셸은 ‘중세 고딕식 건물의 백과사전’이 됐다. 이곳은 무엇보다 갈리시아로 가는 북유럽 순례자들의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 기착지다. 따라서 일찍부터 유명세를 탔다. 1965년, 한 기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오늘날 몽생미셸은 전 세계의…
현대엔 신(神)의 뜻보다 인간의 뜻이 우위를 점한다. 현실에서 눈에 보이는 힘은 거의 사람의 것이다. 다만 폭염, 태풍, 홍수, 강풍, 풍랑, 해일, 대설, 가뭄, 한파, 지진, 화산활동 등은 예외다. 신의 지위를 넘보는 과학도, 자연의 힘 앞에선 무력하다. 기상청은 올여름 태풍이, 거셀 것을 예고한다. 세계적으로 중국의 광동성, 두바이, 케냐는 물 폭탄 세례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여름철이 다가왔다. 언론에선 행안부, 농식품부, 소방청 등 중앙정부의 재해 예방 대책 소식을 전한다. 한결같이 예찰(豫察)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와중에 본보(경기신문 5월 19일자)는 경기도 공기업인 GH의 ‘전세임대, 반 지하 거주 가구에 대한 풍수해·지진재해보험 가입 지원’ 소식을 관심 보도했다. GH는 지상 주택으로 이사할 경우엔 이사비용도 최대 40만 원 제공 예정이란다. 참신한 정책이다. 돋보인다. 다른 지자체는 기존의 사후 복구 체제에서 사전 대비 체제로 패러다임을 전환했다. 경기도는 다른 지자체와 다르게 사후 복구 체제에 구체성을 보강했다. 미국·유럽식 시스템의 일부다. 유럽과 미국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국민 개개인이 가입한 재해보험으로 피해를 보상받는다. 이 점
의사는 하얀 가운을 입고 환자와 마주한다. 환자는 하얀 가운처럼 물들지 않은 순결한 마음으로 어떤 누구라도 평등하게 대해주기를 기대한다. 나와 마주한 의사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의사이기를 바란다. 그래서 의사의 말은 한마디도 흘리지 않고 담는다. 작은 희망이라도 건지려고 착한 어린이가 된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지금은 더욱 그렇다. 피터지는 전쟁에서 적아를 가리지 않고 오직 치료에 집중하는 의사, 치료제 개발으로 서슴없이 자신에게 임상실험을 하고 피고름을 입으로 짜낸 의사는 얼마나 멋진가. 멋지기 때문에 의사가 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은 많다. 선호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의사가 되었다고 완성되지 않는다. 누구나 의사를 믿고 병원으로 가지만 모든 병을 완치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의사도 사람이기에 모두에게 평등할 수 없고, 그렇게 멋진 의사가 되기에 사회는 그렇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 않다. 사회는 국가라는 울타리를 벗어날 수 없고 국가는 필요한 이미지 만들기에 적극적이다. 나의 아버지는 이기심이 많다. 이기심 많은 사람이 하얀 가운을 입은 것부터 웃긴 일이다. 살기위해 선택
얼마 전 모 대학에서 ‘말하기’특강을 했다. 특강이 끝나자 많은 학생이 일대일로 다양한 질문을 해 왔다. 그런데 학생들의 이야기에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말하기’를 잘하려면 스스로를 믿는 자신감이 중요하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자신감을 만들어줄 ‘칭찬’이 필요하다. 1964년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였던 로젠탈교수는 인상적인 실험을 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 학생 중 20%를 무작위로 뽑아 매우 우수한 지능지수의 학생들이라고 하면서 그 명단을 교사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8개월 후 확인해보니 명단에 있던 학생들이 일반 학생들보다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었다. 교사의 기대와 격려가 학생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칭찬의 중요성을 잘 안다. 인간관계에서 칭찬은 꼭 필요한 소통의 방법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칭찬을 잘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칭찬(稱讚, compliment)이란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함 또는 그런 말’이라고 한다(국립국어원, 2018). 이 정의에 칭찬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나타나 있다. 칭찬을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한다. 칭찬도 연습이 필요하다. 첫째, 비언어를 활용하자! 말
최근 북한이 ‘우리 당의 숙원이자 거창한 혁명’으로까지 선전하고 있는 지침은 무엇일까? 바로 ‘지방발전 20x10 정책’이다. 지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서 김정은 총비서가 매년 20개 군에 현대적 공장을 건설해 10년 안에 ‘인민의 물질문화 수준’을 발전시키겠다며 제시한 것으로 지방발전 사업의 모범사례로 제시된 김화군의 성과를 강조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북한은 김화군 소재 지방공업공장들이 지난 2년간 공업 생산액이 2배 이상으로 성장하고 군 인민들의 사상정신 상태와 물질·문화 생활 영역에서 놀라운 진전이 이룩되고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해당 정책에 대해 통일부는 즉각 “아랫돌을 빼서 윗돌을 괴는 사업”이 될 것이라며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북한의 내부 형편상 최고지도자가 “내가 직접 책임지고 총화하며 완강히 내밀 생각”을 언급하며 최측근 조용원 당 조직비서를 비롯하여 3년 이상 내각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박정근 내각부총리, 전현철 당 중앙 비서 등 당 중앙과 성, 중앙기관의 책임일꾼들로 꾸린 화려한 라인업을 앞세워 비상설추진위를 구성한 만큼 실제 도농격차 완화와 국가 균형 발전의 진전이 가능할지 지켜볼 일이다. 다만 초판 페이스
인간은 농담에 약하다. 농담은 마음을 사로잡는다. 상대방이 고심하여 던진 농담에 당신이 웃었다면, 상대방은 당신을 지원군으로 얻은 셈이다. 농담은 또한 상대방의 속내를 들여다볼 좋은 창이기도 하다. 어떤 농담을 구사하고, 무엇에 웃는지를 보면 상대방의 진솔함이 드러난다. 그러니 상대방과 함께 웃어 동료가 되기 전에 그 속내부터 꿰뚫어 보자. 그는 왜 이런 농담을 했을까? 오픈AI가 GPT-4o(omni, 옴니) 음성 챗봇의 데모 영상을 발표했고, 많은 이들이 자연스러운 대화에 놀랐다. 빠르게 응답하고, 응답을 중간에 끊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구분하여 인식한다. GPT-4o의 성능은 그것이 ‘구사하는’ 유머를 통해 한층 자연스러워진다. 대화 곳곳에 섞인 그것의 웃음소리는 생동감을 더한다. “내가 너를 웃겨보마” 하며 던지는 썰렁한 농담이 아니라, 이용자를 배려하는 듯한 부드러운 농담에 손쓸 도리 없이 마음을 홀라당 빼앗겨 버렸다. 오픈AI는 자신들의 기술에 농담으로 해자(垓子)를 둘렀고,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GPT-4o의 농담에 웃음으로 화답하기는 이르다. 오픈AI의 새로운 음성 챗봇은 왜 우리에게 ‘그녀’ 목소리로 농담을 건네는가?…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군대에 갔었다. 그 당시 가정 형편도 어려웠고 젊은 시절의 치기어린 고민들을 회피하기 위한 도피처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강원도 모처에 위치한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때는 철책이 쳐진 해안가의 작은 부대였다.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은 공감하겠지만 신병이 부대에 들어오면 선임들의 장난과 관심을 동시에 받게 된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온갖 몹쓸 말들을 들어야 했고 육체적으로 힘들어야 했다. 그러나 육체적인 괴롭힘보다 더 마음이 힘들었던 것은 선임들의 말이었다. 어느 한 선임이 내게 말했었다. “너희는 돼지 새끼나 마찬가지야. 예전 시골에서 잔칫날 때려잡기 위해 사료 먹이고 물을 주는 거다. 너희도 다르지 않다. 전쟁이 일어나면 앞에 나가서 총알받이 하라고 밥 주고, 재워 주고, 옷도 주는 거다.” 나는 군대에 있는 동안 그 말이 계속 생각났다. 지금 생각해도 비참하고 모욕적인 말이다. 아마도 짐작컨대 국방의 의무를 마치기 위해 입대하는 청춘 대부분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징집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에 복무하는 기간 동안은 국가에서 더 보살피고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