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한 문학평론가가 '흥부전'에 대한 놀랄 만한 해석을 내어놓는다. '흥부전'에 등장하는 ‘놀부’와 ‘흥부’에 관한 해석을 새롭게 내놓는다. 한 마디로, 나쁜 놈 놀부에게도 본받을 점이 있고, 착한 흥부라고 해도 배워서는 안 될 나쁜 점이 있다는 해석이었다. 그해 나는 시골 출신의 순진한 대학 2학년 학생이었는데, 이 새로운 해석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나의 인식 체계 안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생각해 보면 이런 창의적 해석에 대해 나의 지적 너그러움은 참으로 인색했다. 내가 받은 학교 교육을 생각하면 나의 인색함은 너무도 당연했다. 이 새로운 해석은 당시 30대 초반의 문학평론가 이어령이 들고나온 것이었는데, 장안의 화제를 몰고 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놀부의 악덕과 흥부의 선량함을 대비시켜 이른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교훈적 주제를 강조하는 기존의 전통적 해석에 발칙할 정도로 대드는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55년이 지난 오늘에는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해석이지만 당시로서는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하던 해석이었다. 이 해석은 당연히 ‘창의적 해석’의 끝판쯤 되는 듯했다. 이때의 ‘놀부 해석’이 있음으로써, 놀부를 근대 자본주의적 현실을 인식한 인물로 보고,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고인들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 형량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정신병을 앓고 있다’며 감형을 주장하는 사례가 늘어나는데 이에 대한 뚜렷한 양형 기준이 없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다. 기준이 없으면 법관의 재량에 따라 판결이 크게 달라져 국민의 사법적 신뢰도가 떨어지게 된다. 나아가 사적 제재 등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재판부별 감형 수준을 조정할 적정한 양형 기준 정립이 시급하다는 여론이다. 똑같이 심신미약을 주장해도 재판관의 인정 여부에 따라 판결이 크게 나뉜다. 지난해 1월 어머니를 둔기로 살해한 40대 아들의 경우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지만, 정신감정 후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항소심에서 10년으로 감형됐다. 지난 2022년 재회를 거부한 내연녀를 살해한 40대 남성도 1심에서 징역 30년이 선고됐으나 항소심에서 망상 등 심신미약을 주장해 20년으로 감형됐다. 여론에 따라 양형 들쭉날쭉한 것도 문제다. 미디어 등에 많이 등장하는 등 관심이 많으면 중형을 받고, 관심이 없으면 양형이 가벼운 경우도 드러난다. 지난해 3월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 스토킹 혐의로 기소된 40대 남성은 재판에서 망상
국정을 인공지능이 운영하면 어떨까. 고백하건대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일을 이렇게 처리할 거라면 차라리 인공지능이 하는 게 낫지 않을까. 규정만 따르면 될 문제를 혈연, 지연, 학연 등 인연과 사정을 따져야 하니, 이쯤 되면 ‘사람이 일’인가 싶다. 교통사고 보험금 지급 담당자라고 상상해보자. 피도 눈물도 없는 인공지능은 이런 업무쯤이야 수 초 내에 뚝딱 처리할 거다. 인공지능이 규정에 따라 지급되어야 할 보험금을 ‘알아서 잘’ 결정한다. 블랙박스 영상만 업로드하면 계산은 뚝딱이다. 인간 담당자는 민원인에게 ‘딱 센스있게’ 말한다. “아, 인공지능 저 녀석이 보험금 지급이 안 된다고 하네요. 시스템이 이래요. 저라고 어쩌겠습니까.” 그러면 고객은 돈 한 푼 못 받고 풀이 죽어서 돌아가는 거다. 상상으로는 통쾌해도 현실에서는 비극일 것인데, 고객에게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아무런 권한도 부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직의 기능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조직은 사회의 요구에 반응할 윤리적, 법적 책임 또한 가진다. 사람들의 선호는 상충되거나 시시각각 변화한다. 그래서 조직은 상시적인 학습과 조정에 자원을 할애한다.…
얼마 전에 목격한 일이다. 출근길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들이 꽤 있었다. 대부분 차례차례 앞문으로 승차했는데 한 사람이 뒷문으로 올라탔다. 얌체 같은 행동이었지만 뒷문으로 탔던 경험이 다들 있어서인지 아니면 두세 정류장만 가면 지하철로 환승하는 분들이 많아서인지 승객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이때 젊은 버스 기사가 “뒷문으로 타지 마세요!”라며 한마디를 했다. 매우 짧고 굵은 지적이었다. 내가 듣기에 퉁명스러운 말투였다. 그렇다고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런 경우 보통은 못 들은 척하거나 “죄송합니다!”라고 대응할 텐데 이 승객의 반응은 다소 논쟁적이었다. 자신에게 쏠린 시선이 민망했을지도 모른다. 복잡한 버스 안을 헤치고 운전자석으로 가더니 “말을 왜 그따위로 하냐. 다른 지역 버스는 별말 없는데….”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볼멘소리를 들은 기사는 당황했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뒷문으로 타면 위험합니다. 안전 때문입니다.” 이 말도 틀리지 않았다. 만약 “앞문 승차, 뒷문 하차”라는 기사의 안전 수칙 준수와 “앞문으로 하차할 때도 있고, 뒷문으로 승차할 수도 있지”라는 승객의 임기응변식 대응이 계속 맞선다면 출근길 분위기는 이상해졌을 테고, 두 사람…
동물행동학자들에 따르면 동물의 식생활을 통해서 그들의 짝짓기나 가족의 형태를 예측한다. 인간은 채식성이었던 유인원 선조로부터 갈라져서 진화된 후, 수백만 년을 지내오는 동안 점차 육식과 채식을 함께 먹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치아와 손톱은 여전히 유인원과 같은 모양이어서 호랑이처럼 날카롭지 않다. 인간이 사냥에 뛰어난 것은 이와 손톱이 아니라 커다란 뇌 덕분이었다. 신체 구조는 사냥하기에 불리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도구를 사용하고 협동 작업을 통해서 성공적인 수렵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또한 식물의 뿌리나 과실을 채집하는 데도 도구를 사용하였고, 이를 위해서도 역시 커다란 뇌가 필요했다. 이처럼 식량을 구할 때도 인간은 다른 동물보다 두뇌를 훨씬 많이 활용하는 것이다. 침팬지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식량을 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먹으며, 새끼 침팬지에게 그 방법을 가르친다. 침팬지는 도구를 만들어 사용할 줄 안다. 인간이 익혀야 하는 기술 그리고 그것을 가르쳐야 하는 부모의 역할은 침팬지보다 훨씬 많다. 그 결과, 부모의 책임은 매우 무거워지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모친은 물론이고 부친의 보살핌도 중요하게 되었다. 오랑우탄의 수컷은…
극우화, 난민 유입,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유럽연합 의회는 2024년 세계 최초의 포괄적 인공지능 규제법인 ‘유럽연합 인공지능법’(EU Artificial Intelligence Act)을 가결해 2026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건강 논란에 시달리는 노구의 바이든 대통령조차 2023년 ‘AI 행정명령’을 발령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이용과 발전을 위한 정책과 원칙의 기초를 놓았다. 우리나라 제22대 국회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는 총 6개의 AI 기본법안들이 계류 상태에 있다. 안철수 의원 등 12인이 발의한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 정점식 의원 등 108인이 발의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 민형배 의원 등 13인이 발의한 ‘인공지능기술 기본법안’, 권칠승 의원 등 15인이 발의한 ‘인공지능개발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이 그것이다. 현재 발의된 인공지능 법안들의 내용이 타당하다거나 충분하다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 뭐라도 좋으니 일단 기본법은 통과되어 있어야 고쳐나갈 수라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도 단정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여야가 인공지능 법 정책을 두고 지
반찬가게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최근 고물가로 인한 식재료 가격과 외식비 상승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물가는 지난 2022년 1월부터 지속 상승하고 있어 서민들은 생활에 압박을 느끼고 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외식비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종합포털 ‘[참가격’을 보면 김밥 가격은 2년 전에 비해 15.6% 증가했다. 짜장면 가격은 지난 3월 7069원에서 4월 7146원으로, 칼국수는 9115원에서 9154원으로, 냉면 가격은 1만1538원에서 1만1692원으로 올랐다. 1인 가구의 증가, 시간을 절약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는 것 등도 중요한 원인으로 분석된다. 반찬가게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집밥’을 선호하는 사람이 증가하자 편의점들도 소포장 반찬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지난 4월 시장조사업체 엠브레인이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집밥 취식 및 반찬 전문점(가게) 관련 U&A(Usage & Attitudes) 조사'를 실시했다. 이 결과 응답자의 65.1%가 집에서 먹는 집밥을 선호하며 평소 식사를 할 때도 외식이나 배달보다는 집밥을 먹는 경우가 많은…
인면수심의 아동성범죄와 스토킹 범죄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성범죄 지원센터를 이용하는 피해자들의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인 것으로 나타나 충격이다. 미성년자 성폭력 예방 및 사후 조치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입법 조치가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다른 성범죄와 달리 가중처벌 근거가 부족한 미성년자 스토킹의 경우 대책이 더욱 정밀하게 마련돼야 할 사항으로 지적된다. 지난해 성폭력 등 피해자 지원센터인 ‘해바라기센터’를 이용한 2만3419명 중 미성년자는 총 1만1736명으로서 전체 이용자의 과반인 50.1%를 차지했다. 13세 미만도 31.1%인 7277명에 달했다. 성별로는 여성이 1만9142명으로 81.7%를 차지했고, 남성은 3965명으로 16.9%였다.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와의 관계에서 ‘아는 사람에 의한 피해’가 62.5%, 1만542명으로 가장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띈다. 수원지검 안산지청 형사2부는 며칠 전 60대 남성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아동복지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피의자는 지난해 8월 공원에서 피해 아동에게 접근, 간식을 미끼로 유혹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뒤 성폭
1988년 10월 8일 영등포 교도소에서 충남 공주 교도소로 이감되던 중 탈주해 서울 한 복판에서 인질극을 벌이다가 경찰이 쏜 총에 사살당한 지강헌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쳤다. 지강헌은 징역 17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는데 혐의사실은 상습절도였다. 범죄를 미화하거나 동정할 의도는 없지만 절도 혐의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으니 ‘무전유죄’라 억울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강헌의 인질극이 벌어진 지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다.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되고 카카오 의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것을 보면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조금은 희석된 것 같다. 하지만 ‘전’이 희석된 자리에 ‘검’이 들어찬 것은 아닌가 싶다.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확실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매일 신문 1면을 장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가관이다. 댓글 팀 운영이 폭로되더니 급기야 여당 유력 인사가 현직 법무부 장관에게 자신이 기소된 사건의 공소취소를 청탁하였다는 폭로까지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사이던 시절 민주당 소속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댓글 조작, 일명 드루킹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문재인 정권의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사들은 울산지방경찰청에 수사를 청탁했다는 혐의
2024년 현재, 우리는 유튜브 전성시대를 살고 있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앱으로, 심지어 카카오톡을 제쳤다. 실로 대단하다. 이러한 시대에 살고 있는 나는 유튜브가 축복이자 저주로 느껴진다. 축복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과거에는 상상도 못 했던 정보와 지식을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 방 침대에 편하게 누워 과학, 역사, 문학, 철학 등의 유명 인사의 강의나 인터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다. 학문적, 인문 소양적 즐거움뿐만 아니라 오락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TV에서만 볼 수 있었던 옛날 드라마, 오래된 예능은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는 신상(?) 영상들까지. 각종 분야와 국경을 뛰어넘은 영상들이 셀 수도 없이 있다. 우리는 유튜브 덕분에 유익하고 재미있는 영상을 무엇이든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튜브는 저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유튜브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들의 콘텐츠를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다. 유튜브가 없던 시절에도 대단한 사람들은 있었겠지만, 실제로 내 눈에 보이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대단한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꾸 '나'가 초라해진다. 이런 초라함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