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보았던 생활풍속이 모두 사라진 것이 늘 안타까웠어요. 그런 풍경을 인형으로 연출해 그 때를 모르는 세대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늘 가슴 한켠에 있었지요.”
김시온(67) 전통인형 작가가 그의 두 번째 작품전을 과천 선바위미술관에서 열었다.
첫 번째 개인전 후 2년만의 일이다.
‘세시풍속 열 두 이야기’란 타이틀이 말해주듯 사계절 농경사회 시절 서민들의 얘기를 담았다.
‘설날’, ‘영등제’, ‘삼짓날’, ‘단오’ 등 지금도 전해져 오거나 아예 소멸돼 버린 풍속들을 소재로 했지만 50~60년 전과 현재를 비교하면 낯선 풍경들이 펼쳐진다.
김 작가는 늦은 나이인 10여년 전에 인형제작에 들어갔다.
“처녀 시절 양재에 관심이 많았으나 결혼과 동시 걷어치우고 가사만 돌봤지요. 아이들이 장성하고 심심하던 차 남편의 풍속화를 보고 인형으로 만들면 재미있겠다 싶어 겁도 없이 손을 댔지요.”
남편은 풍속화로 유명한 이서지 화백이다. 옷차림과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그 영향을 받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인형의 얼굴이 해학적인 가운데 닮은 표정이 하나도 없는 게 특징이다.
손자 손녀들의 세배를 받는 할아버지는 귀여워 죽겠으면서도 근엄함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고 간난아이를 안은 할머니는 깊게 패인 주름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지아비와 장성한 아들은 떡메를 치고 아낙은 떡을 뒤집으며 박자를 넣는 ‘떡치기’는 살림을 곤궁하나 설날만은 모두가 즐겁다.
봄을 알리는 삼짇날 온 가족이 장터나들이에 나서고 수릿날 마을 어귀 느티나무에 매단 그네에 막내 여동생을 태우는 언니의 마음씀씀이가 살갑다.
칠월칠석 팔씨름 하는 악동들의 힘쓰는 품새가 익살스럽고 추석 송편 빚는 여인네들의 입방아가 정겹고 곰방대 문 시어머니는 듣는 둥 마는 둥 귀동냥을 한다.
12m×24m 대작인 ‘시집가는 날’은 초가집이 빙 둘러싼 마당 한복판에 꼬마신랑과 각시가 수줍은 듯 맞절을 하고 구경꾼만 무려 70명에 이른다.
김 작가는 ‘엄마 어렸을 적엔’의 이승은 작가와는 시대배경과 재료가 다르다.
이승은이 대부분 닥종이로 제작하는데 반해 옷은 광목을 썼고 몸체는 철사와 솜을 사용했다.
시대 역시 이 작가는 6.25 이후이나 김 작가는 그 이전 서민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그는 늦게 뛰어든 작업에 푹 빠져있으나 회한은 있는 듯 했다.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욕심은 생기나 손놀림이 잽싸지 못해 작품 하나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좀더 빨리 시작했으면 좋았을 걸”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인형 만들기를 계속할 것”이란 김 작가는 기자가 알지 못한 인형감상법을 또 하나 일러주었다.
“풍속인형은 눈과 귀를 동시에 열어야 해요. 귀를 기울이고 가만히 들어보세요. 그들의 대화가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가족간 혹은 친구간 오가는 그 때 그 시절 정감 넘치는 말들이 당신께 속삭이듯이 다가오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