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영전에 바치는 건국포상”

2009.08.13 23:35:23 8면

[인터뷰]독립유공자 故 신표성씨 아들 신극범씨

 

“독립운동을 하신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게 해 준 정부와 국가보훈처에 감사하다.”

제64주년 광복절에 故신표성씨가 국내항의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아들인 극범(78·전 학국교원대학교 총장)씨가 오는 15일 수원시 중소기업지원센터에서 건국포장을 전수받게 됐다.

극범씨는 “아버지가 지난 1947년 중학교 2학년 재학중 돌아가셨고, 일제치하에서 옥고를 치르고 나오셔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며 “생전에 일본 순사들이 집의 순찰함을 들추고 아버지의 근황에 대해 자주 묻곤 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에 대해 그는 “평소 독서를 좋아하셨고, 매우 엄격하셨다”며 “자녀에게 정직하고 성실해야한다는 말을 자주 하시곤 하셨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일제치하 당시인 1942년 창시개명을 강요할때 아버지가 성인 신자의 발음을 ‘지가’로 바꾸어 신씨 성을 바꾸지 않을 수 있었다”며 “지금에와서 생각해보니 아버지의 지혜로움과 애국정신의 뜻을 뒤늦게마나 읽게됐다”고 강조했다.

극범씨는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신 줄은 생전에 몰랐고, 지난 1994년 국가보훈처에서 부친이 독립유공자로 확인됐다는 통보를 받고 나서야 알게됐다”고 밝혔다.

그는 “대학 총장을 퇴임한 지난 2005년부터 독립운동을 하신 아버지의 흔적을 찾기 위해 국회도서관과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찾아 봤더니 독립운동가 김철수, 여운형 선생과 친분이 두터웠던 점 등 아들인 자신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접하게돼 아버지에 대한 자랑스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며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찾게해 준 사학자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제64회 광복절에 건국포장을 수여받게된 故 신표성씨는 1897년 출생해 서울 공립 경성 고등보통학교 부설 교원양성소(현 서울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충남 강경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재직했으며, 1920년 서울청년회와 전진회에 가입해 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1925년 군산 청년회에서 활동하다가 이듬해엔 중국 상하이에 건너가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1928년엔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해 일제의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1년간 복역을 했다.

1932년 이후엔 고향인 논산에서 농민운동을 벌이다가 공판에 회부되기도 했으며 1941년엔 일제의 창시개명에 반대하는 등의 활동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허현범 기자 powervoice@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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