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 산책]등

2015.01.05 21:07:58 16면

 



                                              /문정영

거울에 비친 등은 쓸쓸하다. 죽은 날벌레 같은 뾰루지 몇 개 달고 있다. 원형이 사라진 엉덩이와 뼈대가 보이는 척추를 따라 머리칼은 오래된 이력처럼 적을 것이 없다. 내내 앞의 눈치에 뒤를 열어 두지 못한 사내의 모습이 거기 있다. 사랑은 앞에서 오는 것이라고, 뒤태를 소홀하게 대하더니 어느 하나 비추지 못한다. 10월의 귓속말처럼 등은 소소한 일을 처리하면서 많은 굴욕을 겪었다.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중심이 생겼다. 쉽게 붉히는 얼굴을 가진 앞은 결핍성을 감추고 있다. 등은 스스로를 비추는 줄 모르고 비춘다. 등은 뒤돌아서도 등이다.

- 문정영 시집 『그만큼』(시산맥사, 2014년)

 


 

거울 앞 남자의 뒷모습에서 원형이 사라지고 있다. 탄력적인 엉덩이의 근육도 사라지고 머리칼은 하루가 다르게 빠져나가고 “오래된 이력처럼 적을 것이 없다” 나의 앞을 보고 있는 내 등도 피차 쓸쓸하다. 사랑은 앞에서만 다가오는 것인가. 스스로를 비추는 줄 모르고 비추고 있는 등 뒤를 보라 측은지심으로 바라보고 있는 오래된 사랑이 가만히 당신의 등을 껴안을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버티는 당신이 그 사랑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김명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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