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이 부처와 중생의 세계를 차단하는 경계라면 문은 깨달음을 얻기위해 들락거리는 통로입니다."
화사한 모양새에 비해 사찰과 신앙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던 꽃살문이 조명되고 있다.
부처와 중생을 잇는 엄숙한 경계를 이루면서도 정겨운 아름다움이 깃들인 꽃살문을 주제로 경기도박물관이 주최한 특별한 답사가 진행된 날 동행자인 관조스님(부산 범어사 수행승)은 "사찰 문은 사된 것이 함부로 침범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있다"고 말했다.
중생이 이승의 티끌을 털고 부처의 극락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선 경계인 '문'을 최상으로 치장해야 한다는 것.
애초 이번 '꽃살문 답사'의 목적지는 전등사와 정수사, 그러나 때마침 '꽃살문의 정수'라는 정수사에 개보수가 한창이어서 답사를 주최한 경기도박물관은 공주의 마곡사와 논산 쌍계사로 서둘러 변경했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9일 '꽃살문 답사'에 따라 나선 날, 차량 2대에 동승한 80여명의 참가자들은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꽃살문 전문가인 관조스님(부산 범어사 수행승)과 해설자들의 설명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워 듣는다.
답사지로 정한 마곡사와 쌍계사는 사찰 규모나 꽃살문 등에서 여러모로 대조를 이루는 사찰이다.
백제 의자왕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계종 6교구 본사인 마곡사는 이후 고려초기까지 폐사로 있다 고려 명종때 보조국사에 의해 중창된 사찰로 임진왜란때 소실되어 다시 효종때 각순대사가 중수한 사찰이다.
보물 801호인 대웅보전과 800호인 영산전, 802호 대광보전 외에도 인도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특이한 모양의 오층석탑, 그리고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이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해 마곡사에 은신한 적이 있었는데 뒷날 이를 회상해 식수한 나무가 무엇보다 눈에 띈다.
관조스님은 "마곡사처럼 석가모니와 비로자나불을 각각 모신 대웅전이 2채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서 드물다"며 "사찰을 끼고 있는 산봉우리 형세가 태극문양으로 들어오긴 쉽지만 나가기가 어려운 모양을 띠고 있다"며 사찰의 특징을 설명했다.
대광보전 정면에 장식된 '솟을국화 꽃살문' '금강저꽃살문' '민꽃살문' 등 열다섯 짝의 꽃살문은 언뜻 봐서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은은한 맛을 풍겼다.
관조스님은 특히 '금강저꽃살문'에 대해 "금강저란 적을 물리치는 무기로 나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뜻을 담고 있다"며 많은 사찰에서 보여지는 흔한 문양이라고 말했다.
마곡사를 뒤로 하고 내달린 논산 쌍계사 답사.
우선 대웅전 정면의 문짝에 새겨진 화려한 일곱가지 꽃살무늬가 마곡사에서 보던 것과 확연히 차이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마곡사의 말사로 절의 규모는 작고 빛바랜 단청으로 인해 겉보기에는 소박해 보이지만 대웅전 내부에 연꽃으로 포개 치장한 천장이며 나무로 학을 만들어 아름답게 장식해 정겨운 느낌이 드는 사찰이다.
무엇보다 쌍계사 대웅전이 보물 408호로 지정된 이유는 정면 다섯칸에 달린 열짝 문을 장식한 국화, 모란, 연꽃, 무궁화, 작약, 매화, 태극선의 꽃살문 때문일 터.
절의 터줏대감일 것으로 보이는 보살의 애정어린 쌍계사의 역사와 역할에 대한 설명이 덧붙어졌다.
보살에 따르면 "쌍계사는 세계 최초의 한글 경판인 월인석보가 만들어지고 보관된 곳"이라며 "부처상이 북으로 향한 유일한 호국사찰"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특히 "쌍계사 꽃살문은 우리나라에서 불교조각예술이 최고로 발달된 경지를 보여준다"
며 "안에서 보면 무늬가 없어지는데 이는 바로 모든 것이 멸한 해탈의 세계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답사 기행은 경기도박물관이 지난 4월 23일부터 5월 26일까지 일정으로 특별전시하는 '해탈의 문 사찰 꽃살문 전시회'의 일환으로 계획됐다.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기획·전시된 후 경기도박물관으로 옮겨 열리는 '꽃살문 사진 전시회'는 단순한 형태의 날살문과 띠살문부터 가장 화려한 솟을꽃살문에 이르기까지 관조스님이 전국 22개 사찰에서 촬영한 70여점의 사진을 선보이고 있다.
"문살이 곧 사찰의 얼굴이기 때문에 자연스레 시작했습니다."
꽃살문 등 문살 사진을 통해 20여년간 한국 불교의 아름다움을 전파하고 있는 관조스님의 설명이다.
김영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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