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대통령, 고건 총리 사표 수리

2004.05.25 00:00:00

노무현 대통령은 25일 아침 국무회의에 앞서 열린 조찬 회동에서 각료 제청권을 고사하며 제출한 고건 국무총리의 사표를 수리했다.
고 총리는 회동이 끝난 직후 국무회의가 열리자마자 간단한 이임사를 한 뒤 곧바로 국무회의장을 떠났다.
이에 따라 노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개각을 하더라도 통일, 문화관광.보건복지부 등 3개 부처에 한정될 것이라며 다른 부처는 동요치 말고 열심히 일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로 인해 노 대통령과 고 총리간의 각료제청권 행사를 둘러싼 파문은 일단락 됐지만 노 대통령의 집권 2기 국정구상엔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청와대는 그동안 고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지 않겠느냐며 자신해 왔다. 한마디로 사태를 쉽게 생각하며 고 총리가 이처럼 완강하게 나올진 전혀 상상도 못하다 허를 찔린 셈이다.
청와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이번 사태로 인한 부담이 결국 노 대통령에게 고스란히 향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고 총리의 의도가 정확히 어디에 있든지 간에 모양새가 노 대통령과 떠나는 총리간의 정면 갈등으로 비쳐지면서 노 대통령에겐 적잖은 흠집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청와대 내 일부에선 처음부터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고 총리와 조율을 거쳤어야만 했던 것 아니냐는 뒤늦은 자성론이 나오고 있다.
김덕봉 총리 공보수석은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이 고 총리를 무려 세 차례나 찾아가 각료제청을 요청했으나 끝내 거절한 배경에 대해 "고 총리의 결정에 어떤 의도나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다"며 "순수하게 받아 들여 달라"고 피력했다.
다시 말해 "물러나는 총리가 신임 장관을 임명제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고 총리의 제청권 요청 고사이유를 액면 그대로 받아 들여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의 배경을 놓고 청와대와 총리실 안팎에선 다양한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참여정부가 내세운 책임총리제의 정신에 따라 헌법상의 권한을 염두에 두고 대응했다는 분석이다.
총리실 관계자는 "고건 총리는 문서로 각료제청권을 행사하는 등 나름대로 헌법이 보장한 총리의 권한을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이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는 요구를 받아 들이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청와대측과의 갈등설도 나오고 있다. 고 총리가 수십년 동안의 공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짜여진 각본에 따른 거수기 역을 정면으로 거부한 것 이라는 관측이다.
고 총리는 특히 조기 개각이 뚜렷한 이유없이 단지 여권 내 차기 대권주자들의 경력 관리용으로 비쳐진데 대해서도 수긍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시각은 한 발 더 나아가 고 총리가 청와대쪽에 서운한게 많은 것 아니냐며 본격적인 갈등설을 제기하고 있다.
사의를 표명하긴 했으나 여전히 헌법상 제청권자인 자신에게 청와대가 어떤 상의나 통보 없이 언론을 통해 조기개각설을 흘리며 우회적으로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고 총리를 적지 않게 자극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고 총리의 각료임명 제청권 고사 파동은 청와대의 '원칙에서 벗어난 결과'였고, 노 대통령과 청와대가 자초한 면이 없지 않다.
결국 청와대는 이번 조기개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인선추천, 심사, 검증이란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아 참여정부가 자랑해온 시스템에 의한 인사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박남주기자 pnj@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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