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함께 하는 오늘]괄호의 거처

2020.06.10 04:00:00 16면

괄호의 거처

/허은희

가방이 반만 열린 지점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그녀는 당신의 애무가 논리적이라고 했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그림이라고 했다. 체위를 바꿀 때마다 책장 넘기는 소리. 물을 삼키는 목젖에서 유향 냄새. 당신의 방에 저물지 않는 계단이 있다고 했다.

지퍼의 요철이 한쪽으로 비틀려 있다는 걸 눈치 챈 건 오래전이다. 이젠 가방에 손을 넣을 수가 없다. 절반의 체온이 따로따로 미끄러진다. 두 발을 꺼내야하는데.

그녀가 물었다. 키스 할 때 당신의 혀는 어디에 있나요

 

 

 

 

■ 허은희 1966년 인천 출생. 2003년 『시사사』로 등단해 시집 『열한 번째 밤』이 있다. 제28회 인천문학상과 제3회 사사사작품상을 수상했다.

 

허은희 webmaster@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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