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의 창]남북관계, 멘탈 게임 그리고 검문소

2020.06.18 04:00:00 인천 1면

 

지난 6월 4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아 대남공세의 포문을 연 이후 남한과 북한 그리고 미국은 또다시 ‘멘탈 게임’을 시작했다. 대남 비난 담화를 발표한 지 5일 만에 판문점 직통전화 등 남북 간 연락채널을 전면 차단한데 이어 노동신문 및 ‘우리민족끼리’, ‘메아리’ 등 선전매체를 총동원하여 우리 측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군사합의서」에서 규정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전단살포’, ‘적대행위 금지’라는 약속을 어겼다며 비난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0년판 기싸움이자, 정신력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북한의 계산된 공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분출하고 있다. 통일부 장관까지 지낸 모 인사가 “우리 측의 잘못 때문”이라는 굴종적인 해석에서부터 ‘남한 압박을 통한 대외관계 돌파구 마련’, ‘경제난 속의 체제결속용’, ‘김여정의 역동적 이미지 구축의 일환’이라는 해석 등이 난무하고 있다. 통일부가 대북전단 살포 단체 관계자 2명을 남북교류협력법 등 위반 혐의로 고발한 것이나, 동 단체 허가 취소 검토 발표는 멘탈 초장부터 문 정부가 밀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형님과 같은 포용적 자세를 견지하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정부의 입장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단기적으론 우리 국민들의 자존감에 큰 상처를 주는 것만은 사실이다.

 

“북한이 문제제기 내지 공세를 하기만 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굴종적으로 부응하려는 남한 정부의 태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일부의 지적도 결코 흘려버릴 수 없는 감정이자 여론이기도 하다. 초장부터 김정은 정권은  남남 갈등과 보수세력의 입지 약화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 4·15 총선에서 압도적인 패배를 당한 보수진영의 현정부 대북 정책 비판 목소리는 ‘모기소리’ 만큼이나 반향이 없다. 남남 갈등은 사실상 승부가 났다. 그러나 안보에는, 위·촉·오 삼국이 대결하던 시절 유비의 촉(蜀)나라를 지키던 난공불락의 요새 검문각(劍門閣)이 긴요하다. 촉나라 수도 청뚜(成都)의 길목을 지키던 이 요새는 제갈량이 총애한 유능한 장수였던 강유(康維)가 버티고 섰던 곳이다.

 

남북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현대판 검문각’이 망가지고 허트러진 곳은 없는지 수선하여 재정비가 요구된다. ‘현대판 한국식 검문각’은 좁은 골짜기를 지키던 겉으론 위압적인 검문각이 아니라, 멘탈게임에서 이기고 기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검문각이 되어야 한다.  휴전선이 하드보더(hard border)라면 검문소는 소프트(보더soft border)이다. 온건한 수단으로 안보의식이 흐트러지는 것을 최소화하는 역할도 한다. 물론 검문 당하는 사람은 치욕이라고 여겨, Maximilian Lohnert 영국 에딘버그대 교수는  이를 ‘모욕주기 전략’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인간안보’의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안위를 보장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곳곳에 ‘검문소’가 설치되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검문소가 아닌 민간이 주도한다. 건물이나 병원 등에 들어가면 입구에서 출입자의 체온을 잰다. 정상인자만 출입이 허용된다. 그래도 우리는 불평하지 않는다. 코로나 검문이 우리 공동체의 안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탈보도 마찬가지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김정은 정권이라는 만만치 않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비록 물리적 검문소는 줄이거나 없애더라도 ‘마음의 검문소’는 지켜나가자. ‘과잉안보’도 안 되지만 ‘과소안보’도 안 된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언제든 배신한다. 사마광이 쓴 역사서 「자치통감」은 배신적 인간의 종합판이나 다름없다. 그 배신적 행태를 북한정권이 지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큰 형으로서 대범한 자세를 지켜나가되, ‘마음의 검문소’는 허물지 않는 상태에서 국민의 자존감도 지켜주는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정도이다.

이일환 webmaster@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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