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일의 오지랖] 수해(水害) 단상(斷想)

2020.08.13 06:01:18 16면

 

장마기간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곳곳에 홍수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하천 부근이나 산에 인접하여 살고 있는 산촌이나 해안가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일 것이다. 인명 피해 소식도 들려와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요즘이다.

 

도로가 물길이 되고, 다리에 닿을 듯 출렁이는 흙물을 TV로 보고 있으니 1972년의 여름이 생각났다. 그 해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한 해 앞두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내리던 비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웃 동네와 우리 동네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에서는 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동네의 친구, 형들과 어울려 물 구경을 하러 둑방 위로 올라갔다. 평소에는 작은 물길이었던 개천에는 생전 처음 보는 흙탕물이 폭포처럼 흘렀고 이웃 동네와 우리 동네를 연결하는 다리는 물에 잠길 듯 위태로웠다. 우리는 둑방 위에 앉아 물에 떠내려 오는 온갖 쓰레기와 그 속에서 꺽꺽대며 떠내려 오는 돼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았다. 동네 청년들은 잠길 듯 출렁거리는 다리위에 서서 올가미로 돼지를 건져냈다.

 

둑방에서 구경하던 동네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질렀다.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았다면 물에서 건진 돼지는 그 날 저녁에 동네사람들의 뱃속을 든든하게 채웠을 것이었다. 그러나 밤이 되어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잠이 어설피 들 무렵, 둑방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외침이 집 밖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혼비백산한 우리 식구는 몇 시인지도 모를 한밤중에 근처의 초등학교로 피난을 갔다. 워낙 급하게 집을 빠져 나오느라 몸에 걸친 옷이 전부였고, 강당에 수용된 사람들은 어른들끼리 모여 앉아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나와 같은 어린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는 생각, 집에 두고 온 장난감의 안위가 걱정 되었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먹을거리를 배급했다. 무엇을 먹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강당의 한쪽 구석에서 무엇인가를 먹었던 기억만이 사실인 듯 아닌 듯 희미하다. 아마도 그 음식은 동사무소에서 제공했을 것이리라 추측 할 뿐이다. 어른들은 학교에서 동네로 분주하게 다녔고 우리는 비오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거나 잠시 비가 그치면 운동장에 나가 뛰어 놀았다. 그렇게 이틀 밤을 학교 강당에서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히 개천의 둑방은 넘치지 않아서 큰 피해는 없었다. 얼마 후 물이 빠진 개천에는 온갖 쓰레기들로 가득 덮여 있었다. 어른들은 치울 엄두를 내지 못했고 동에 아이들은 어김없이 그 쓰레기를 휘젓고 다녔다. 기다란 작대기를 들고 쓰레기 더미를 뒤지다보면 쓸 만한 놀이감이 나오곤 했다.

 

그때로부터 50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세상이 다섯 번 가까이 변할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의 대한민국은 그 당시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자연의 거대한 힘을 인간이 어찌 할 방도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반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인재(人災)로 인한 피해가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을 보니 허탈하기까지 하다. 정부와 지자체의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었는지에 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당쟁(黨爭)의 도구로 쓰는 행태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민은 수해(水害)의 고통 속에서 살길이 막막한데, 4대강에 설치된 보의 효용성에 관해 명확한 근거도 없이 제각각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일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댐의 관리와 4대강 보의 영향에 대해서도 전문가들과 함께 깊이 있는 조사와 평가를 당부한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 4대강에 설치된 보의 기능에 관한 확실한 데이터를 만들어 4대강 보에 대한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기를 바란다.

 

코로나19의 감염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이 시점에, 수해로 인한 피해까지 겹치면서 국민이 체감하는 피로도는 증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해 현장에서는 경찰과 소방관의 헌신, 담당 공무원과 군의 협조체계를 통한 복구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생업을 뒤로한 채 수해 현장으로 기꺼이 달려가는 수많은 자원봉사자에게 깊은 감명을 받는다. 이들이야말로 우리 공동체를 지탱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자 희망이다. 이제부터는 적극적인 피해 복구와 신속한 보상 절차가 필요하며, 이는 정부와 지자체의 몫이다.

임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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