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발의 거리투사, 하늘의 별 되다…백기완이 살아온 길

2021.02.15 11:55:30 3면

남북분단으로 가족 뿔뿔이 흩어져 ‘통일운동’ 시작
1948년 서울 경교장서 만난 백범 김구에 큰 영향 받아
‘항일민족론’·‘백범어록’·‘버선발 이야기’ 책 펴내

 

‘백발의 거리투사’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하늘의 별이 됐다. 민주화운동가로서 한 평생을 살아온 그의 일생을 돌아보고자 한다.

 

백기완에게 있어 ‘통일운동’은 운명이었다. 1933년 황해도 은율 구월산 밑에서 태어난 그는 1945년 8·15 해방 이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내려와 정착했다. 여덟 명의 식구가 남북으로 나뉘어 살게 되자 집안을 하나로 잇고자 하는 뜻에서 13살의 나이로 통일운동을 시작했다.

 

초등학교만 다니고 독학으로 시, 소설을 읽고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워 영어 천재로 알려지기도 한 소년 백기완은 1948년 서울시 종로구의 경교장에서 백범 김구를 만난 뒤 고결한 뜻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60년, 4·19혁명에 뛰어들어 정치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애썼으며, 1966년에는 박정희 유신독재를 끝내기 위한 염원을 담아 재야 연합전선의 하나로 윤보선, 함석헌, 장준하와 야권 통합운동을 성사시켰다. 1967년 당시 독립운동가 장준하와 함께 백범사상연구소를 설립하려고 했으나 탄압당해 무산됐고, 1972년에 현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를 충무로에 개소했다.

 

 

백범사상연구소는 정부의 탄압과 운영난으로 문 닫기를 반복했고, 백기완 작가는 1976년 딸들의 월부 피아노를 팔면서까지 활동을 재개했다. 1979년은 그에게 있어 파란만장했다. 민주청년협의회를 결성했고, ‘명동 YMCA 위장결혼사건’으로 전두환 서빙고 보안사로 끌려가 고문을 당한 뒤 구속수감됐다.

 

1980년에 병감정유치로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난 후 투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광주민중항쟁 소식에 분개하며 반독재민주화 투쟁의 필연성을 역설했다. 1984년 재야인사들과 민주회복국민회의를 결성한 그는 백범사상연구소를 발전적으로 해체, 통일문제연구소로 확대해 설립했으며, 1985년에는 고문 저지 공동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또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을 창립해 서울지부 의장을 맡았다.

 

현 민주노총의 전신인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결성으로 1990년대 활동을 시작한 백기완 통일운동가는 1991년 재야인사 3·1절 시국 선언, 한반도 비핵화 1000인 선언에 이어 1992년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범국민투쟁본부를 결성했다.

 

그는 해고노동자, 고문피해 진상규명, 비정규직 여성 등 민중의 곁에 늘 함께였다.

 

 

2014년 당시 세월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집회와 국정원 댓글 사건 규탄 시국회의에 참석했으며, 2015년 민중총궐기대회서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백남기 농민을 살려내라는 싸움에 가담했다.

 

4대강을 파괴하는 이명박 정권 반대투쟁, 박근혜 탄핵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도 자리를 지켰으며,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우며 추모 연작시 ‘쪽빛의 노래’로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백기완 통일운동가는 작가로서도 뜻을 펼쳐나갔다. 1969년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한일회담 반대투쟁과 민중혁명의 의미를 담은 영화 극본 ‘어린 엿장수의 꿈’을 창작하는가 하면, 1971년 ‘항일민족시집’, 1972년 ‘항일민족론’, 1973년 ‘백범어록’을 출간했다. 1979년에 펴낸 딸에게 주는 편지 형식의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는 판금조치에도 대학가와 노동운동 진영의 필독서가 됐다.

 

이후 옥중시 ‘젊은날’을 비롯해 이야기 소설 ‘따끔한 한모금’ 등을 썼다. 특히 2000년에는 너도나도 일하고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노나메기 운동을 제창, 계절마다 내는 책 ‘노나메기’를 창간해 2004년까지 9호를 펴냈다. 끝으로 2019년, 백기완 작가는 민중의 전형을 빼어나게 빚어내고 노나메기 사상을 담은 서사 ‘버선발 이야기’를 세상에 내놨다.

 

일생을 민주화를 위해 목소리 높여온 고(故) 백기완. 한국 민주화 운동의 산증인이자 진보진영의 원로인 그는 2월 15일 투병 끝에 하늘의 별이 됐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

신연경 기자 shinyk@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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