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동의단지회 붉은 피로 대한독립 위해 투쟁한 ‘안응칠 역사’

2021.02.24 10:31:31 10면

 

◆안응칠 역사/안중근 글/독도글두레 옮김/독도도서관친구들/384쪽/값 1만8000원

 

“만약 인민이 없다면 국가가 어떻게 있겠습니까? 지금은 민족이 중심이 되는 세상인데, 무슨 까닭으로 유독 한국 민족만이 어육(魚肉)이 되는 것을 달게 여기고 앉아서 멸망을 기다린단 말이오?”

 

‘안응칠 역사’는 안중근 의사의 옥중 자서전으로 1909년 12월 13일에 쓰기 시작해 1910년 3월 15일에 집필을 마쳤다.

 

187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안중근은 어려서 안응칠로 불렸고, 해외생활을 하면서도 이 이름을 많이 사용했다. 1896년 16살에 김아려와 결혼해 2남 1녀를 두었고, 이듬해 천주교에 입교해 세례를 받고 도마(토마스)라는 세례명을 갖게 됐다.

 

안중근은 27살이던 1905년에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한인들을 모으고 국권회복을 도모했다. 이 과정에서 돈의학교와 삼흥학교를 세우는 등 인재 양성에 힘썼고, 평양에서는 삼합의라는 광산회사를 설립해 산업 진흥운동에도 매진했다.

 

이후 연해주로 가서 의병대열에 참가해 대한의군을 조직하고 무장 항일투쟁에 나섰다. 1909년, 안중근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동의단지회’라는 비밀 결사를 조직했고, 이때 모인 이들은 왼손 네 번째 손가락 한마디를 잘라 태극기에 붉은 피로 ‘大韓獨立’(대한독립)을 새겼다.

 

 

그해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역에서 조선통감부 초대통감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했다. 1910년 2월 14일 공판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3월 26일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그의 나이 31세였다.

 

그렇기에 ‘안응칠 역사’는 순국으로 미완에 그친 ‘동양평화론’과 더불어 안중근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문헌이다. 그러나 안중근의 친필 원고가 발견되지 않은 채, 일본인이 남긴 필사본을 토대로 쓰여진 편집본들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독도글두레는 연구와 작업을 통해 엄밀한 판독과 대조 과정을 거쳐 오류를 바로잡았다며 “이른바 원본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는 비판정본”이라고 소개했다.

 

 

독도글두레 안재원, 김태주, 김은숙, 윤재성이 비판정본의 제작, 번역, 학술적인 주석을 공동으로 작업했고, 필사본에 의거해 ‘안응칠 역사’를 책의 제목으로 삼았으며, 지은이도 ‘안중근’으로 명시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책은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나?’라는 질문을 건넨다. 더불어 “안중근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바로 안중근을 살리기 위해서 읽으면 된다. 안중근이 꿈꿨던 독립된 나라가 바로 현재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기 때문에 그를 살리는 것이 대한민국을 살리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생전에 안중근이 남긴 ‘약한 것으로 강한 것을 제거하고, 인으로 악에 대적하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이 책을 읽길 바란다.

 

[ 경기신문 = 신연경 기자 ]

신연경 기자 shinyk@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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