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일의 오지랖]사라지는 단어 ‘아지랑이’

2021.03.25 06:00:00 13면

 

 

내가 살던 곳은 지방의 소도시였다. 요즘 같은 봄날, 주택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논과 모종을 심지 않은 밭이 사방에 펼쳐져 있었다. 마땅한 놀이감이 없던 국민학교 아이들은 무작정 들판에서 뛰어 놀았다. 깡통 안에 돌을 넣어 주둥이를 틀어막으면 훌륭한 놀이감이 되었다. 깡통차기에 지치면 논두렁에 나란히 앉아 들판을 바라보며 숨을 돌렸다. 들판 저 멀리에서 겨울에는 볼 수 없었던 구불구불한 무언가가 하늘로,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지랑이는 태양의 복사열에 의해 온도가 올라간 지표면의 공기와 그 위쪽의 차가운 공기가 대류 현상을 일으키면서 햇빛의 굴절에 의해 아른거리게 보이는 현상이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이에 대한 원리를 전혀 이해 할 수 없었기에 그저 신기하게 바라만 보았을 뿐이었다. 중학생이 될 무렵에는 아지랑이가 더 이상 신기한 현상이 아니었다. 과학적 원리를 이해해서가 아니라 매년 봄이면 당연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중년의 나이가 된 지금, 아지랑이를 당연히 보기는 매우 힘들어졌다. 많은 봄날이 미세먼지와 황사로 인해 하늘은 뿌옇고, 맑은 햇살은 아주 드물게 땅에 내려앉는다.

 

도시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농촌에서 살고 있는 아이들조차 아지랑이를 보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게 되어버렸다. 미세먼지와 교대로 하늘을 뒤덮는 황사는 아지랑이 대신 봄을 알려주는 전령사가 되었기 때문이리라. 아침에 눈을 뜨면 TV를 켜고 오늘의 날씨를 주의 깊게 보는 일도 일상이 되었다. 중국발 황사나 미세번지가 발생하는 날이면 날 선 원망을 쏟아내곤 한다. 이제는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KF94 마스크는 이미 우리에게 봄철의 생활 필수품이 된지 오래이다. 아마도 시간이 더 흐르면 후대의 사람들은 아지랑이가 무엇인지도 모를 일이다.

 

환원론적(還元論的) 이야기지만 이러한 상황의 원인이 발전과 성장, 이익만을 최고선으로 생각하는 자본주의시장 때문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시스템을 벗어나 살 수는 없는 노릇이며 원시시대로 돌아가기를 바랄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봄이면 찾아오는 미세먼지와 황사 대신 아지랑이를 볼 수 있기를 빌어 본다. 이를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단체에 후원금을 낼까?’ ‘차를 덜 타고 걸어 다녀 볼까?’ ‘플라스틱 제품 사용을 줄여볼까?’

 

유독 오늘은 뭐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숨이 답답해서 견디기 힘든 아침이다.

 

아지랑이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그림이나 말로써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땅과 가까운 낮은 대기에서 아른아른 하늘로 올라가는 그 몽환적인 장면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까? 눈으로 직접 보기 전에는 그 오묘한 광경을 이해하기 어려울 텐데...

임선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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