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지구 반대편에서 반대로 불린 라 쿠카라차’

2021.04.30 06:00:00 13면

혁명과 노래 ⑨

 

 

무심히 따라 불렀던 노래의 본뜻을 알고 놀라는 경우가 많았다. 라 쿠카라차가 대표적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교과서에 나온데다 방송을 많이 타서 가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병정들이 전진한다/ 이 마을 저 마을 지나/소꿉놀이 어린이들/ 뛰어와서 쳐다보며

싱글벙글 웃는 얼굴/ 병정들도 싱글벙글/ 빨래터의 아낙네도 우물가의 처녀도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후략)

 

라 쿠카라차(La cucaracha)는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라는 뜻.

 

원뜻을 붙여 보면 ‘바퀴벌레 바퀴벌레 아름다운 그 얼굴’ 이렇게 부른 셈이니 황당하고 우습다. 그러나 ‘바퀴벌레’가 가사 속에 들어간 사연을 알고 나면 웃음은 쏙 들어간다.

 

사연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격동의 과거사를 가진 멕시코를 알아야 이해된다.

마야문명과 아즈텍, 찬란한 고대 문명의 발상지였던 멕시코는 1521년, 스페인에 정복 당하면서 300년간 식민통치 받는 굴욕을 겪는다. (라 쿠카라차는 원래 스페인 민요로 스페인 상륙과 함께 전래되었다.) 1821년, 독립했지만 미국과의 전쟁에서 져 영토를 대거 빼앗기고 오스트리아의 통치를 받는가 하면 외국자본, 대지주와 결탁한 부패한 정부에 의해 노동자, 농민의 삶이 파탄지경에 이르는 등 험난한 역사가 이어진다. 결국 1910년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민중혁명이 일어난다. 멕시코 전래 뒤 여러 노랫말로 불리던 ‘라 쿠카라차’는 혁명 당시 농민군들이 만든 노랫말로 퍼져나갔다.

 

한 남자가 한 여인을 사랑하네/ 그러나 그 여인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네/ 그것은 마치 대머리가 큰길에서 주운/ 쓸모없는 빗 같은 것이라네/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걸어서 여행하고 싶지 않네/가진 게 없기 때문이라네/ 오 정말 가진 게 없다네/ 피울 마리화나도 없다네...(중략)....누군가 나를 미소 짓게 하는 사람/ 그는 바로 셔츠를 벗은 판초 비야라네/ 카란사의 군대는 벌써 도망가 버렸네/ 판초 비야의 군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라네...(후략)

 

노래는 뒷부분에 나오는 ‘혁명영웅 판초 비야’를 칭송하고 혁명을 예찬하고자 지어진 것인데

엉뚱하게 실연한 남자, 여인세평(世評)을 앞부분에 늘어놓은 것은 생사가 오가는 혁명전장에서 은밀하게 불렀기 때문 아닐까 싶다.

 

판초 비야의 삶은 가슴 아프다. 1878년,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나 부모를 일찍 여윈 뒤 농장일꾼으로 살던 비야는 누이동생을 강간한 농장주를 살해한 뒤 산속으로 도주, 의적이 된다. 혁명 발발 후 게릴라전에 참여, 신출귀몰한 전투실력으로 농민혁명군 총사령관이 되고 혁명 후 대통령 후보에까지 올랐지만 정적에게 암살 당해 파란만장 삶을 마친다.

 

라 쿠카라차, 뜬금없이 바퀴벌레란 단어는 왜 들어갔을까.

바퀴벌레처럼 비참한 삶을 사는 멕시코 민중을 표현했다는 설, 멕시코 전통의상 판초우, 솜브레 차림의 농민혁명군 대열이 떼지어 가는 바퀴벌레 같아 붙였다는 설, 농민혁명군의 10년간의 항쟁이 질긴 생명력의 바퀴벌레 같아 붙였다는 설 등이 있다.

 

그 뜨거운 멕시코 민중혁명가가 지구 반대편으로 날라와 명랑한 국군찬양동요로 번안돼 불린 것을 생각하면 바퀴벌레 노랫말보다 더 황당하지 않은가.

 

(인터넷창에서 www.월드뮤직.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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