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핑크 마티니의 심퍼티크(Sympathique)’

2021.06.29 06:00:00 13면

월드스타를 만든 월드뮤직3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부잣집 애’에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열 살 넘으면서 헤세의 싯다르타, 앙드레 지드의 돌아온 탕아(아! 내 인생 단편) 속 주인공에 빠져 밤을 태우던 조숙한 문학소녀는 ‘그림자 없는 인간은 깊이도 없을 것’이라 단정했다.

 

스무 살 넘어서도 어둠에 집착, 연애도 결손가정 출신이나 감옥 들락거리는 운동권 사내들과 했고 단골 카페도 대로변 햇빛 쏟아지는 공간이 아닌 곰팡이 냄새 피는 지하공간이었다. 청춘의 끝자락에 월드뮤직을 만나 음악으로 세계 일주를 하던 중에도 미국음악은 관심 밖이었다. 원주민 땅 따먹고 세워진 이백여 년 미국사가 낳은 음악들은 ‘오랜 역사 속 민중의 희노애락에 오욕이 발효돼 나온 월드뮤직의 본령’과 멀 것이라 예단했다. 중 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즐기던 팝송 가사들이 온통 러브에 울고 웃는 내용이었던 터라 유치했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때 대학을 다녀 반미감정도 있었다.

 

핑크 마티니를 늦게 만난 이유들이다.

핑크 마티니 음악이 좋다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 건 2000년 넘어서였는데 미국음악이라 패스. 그룹 이름이 핑크 마티니가 뭐야? 웬 칵테일 이름? 아마 신시사이저 웽웽 울리고 드럼 때려 부수는 정신없는 팝그룹이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참 지난 어느 가을 저녁, 라디오 저녁 방송이었던가.

 

쇼팽 작곡의 피아노곡 (안단테 스피아나토와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이 흘러 클래식 방송인 줄 알고 들었는데 스패니쉬 발음의 노래가 이어졌다. 화음과 목소리가 심장을 확 긁었다. ‘ 핑크 마티니 밴드가 1997년에 내놓은 첫 앨범 심퍼티크(Sympatique)에 수록된 라 솔레다드(La Soledad)‘ 라는 디제이의 소개를 급히 손바닥에 메모했다.

 

바로 핑크 마티니의 CD를 구입해 들었다. 세상에! 음반의 모든 곡이 황홀지경으로 이끈다. 첫 곡 아마도 미오(Amado Mio), 타이틀 곡 심퍼티크(Sympatique), 올드뮤직 케 세라 세라(Que sera sera) 등 재료에 따라 맛을 변주하는 칵테일처럼 핑크 마티니의 음악들은 클래식은 물론 보사노바, 샹송, 칸소네, 플라멩코 등을 여러 언어로 부른 월드뮤직이었다.

 

음악이 좋아지니 그룹도 좋아지고 이름도 달리 들린다. 핑크 마티니가 코미디 영화 핑크 팬더, 그리고 오드리 헵번이 나온 1960년대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 중 마티니 칵테일 나오는 장면에서 따왔다는 것, 음반 내기 위해 만든 ‘하인즈 레코드(Heinz Records)’라는 회사이름이 그룹 리더 토마스 로더데일이 기르던 개 이름이었다는 것을 듣고 ‘재밌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방송광고음악으로 산타 베이비(Santa Baby), 행 온 리틀 토마토(Hang on little tomato), 심퍼티크(Sympatique)가 나올 때 설레기까지 했다. 팬이 됐다는 이야기다.

 

음악이 좋아지면 가까이서 보고 싶어진다. 세 번이나 내한 공연을 했다는데 덜익은 선입견 탓에 다 놓쳤다. 조선시대 문인 유한준의 ‘알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된다’ 는 명언이 다시금 통렬히 꽂힌다.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핑크 마티니의 음악, 공연은 유튜브를 통해 넘치도록 보고 들을 수 있다. 내게는 첫 음반이 첫사랑이자 최고의 사랑이다.

 

(인터넷창에서 www.월드뮤직.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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