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혀 밑의 도끼’

2021.08.18 06:00:00 13면

 

 

 

‘사언지점 불가위야 (斯言之玷 不可爲也)’라는 말이 있어요. 시경(詩經)에 나오는 이 말은 ‘내가 한 번 잘못 내뱉은 말 한마디는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지요. 요즘 여야 대선 예비후보들이 총칼 전쟁보다도 더 가혹한 선거전을 치르고 있는데, 말 한마디에서 비롯된 시비들이 정말 살벌하네요. 전자기술의 발달로 10년~20년 전에 했던 말까지 자료가 남아 있어서 무슨 말만 하면 과거의 언행들이 득달같이 소환되곤 하니 놀랍군요.

 

불과 몇 년 전에 했던 말과 다른 말을 하다가 딱 걸린 후보들이 곤욕 치르는 걸 바라보노라면 “저 노릇도 참 못 해먹을 짓이네”하는 딱한 마음이 먼저 드네요. 내남없이, 살아가는 일이란 그저 쓰레기를 만드는 일이 태반인데, 그렇게 수십 년을 한 점 티 없이 사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그런데도 대선전 양상은 영락없이 ‘내로남불’의 극치를 이루고 있네요. 지금 봐서는 춘풍추상(春風秋霜) 같은 좋은 명언들은 머지않아 영영 사라지게 생겼군요.

 

‘정치는 곧 말’이라는 속언(俗言)이 있어요. 현대정치는 철저하게 말로 하는 경쟁이니까 그 말이 아주 그르지는 않은 듯해요. 그래서 그런지 대개 말 잘하는 사람들이 정치판에 있군요. 그런데 요즘 정치권에서 나오는 잡음들을 보니까, 말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좋은 건 아닌 것 같아요. 말을 잘하면 뭐든지 마음보다는 먼저 말로 해결하려고 들잖아요. 그러다가 보니까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죠.

 

불과 얼마 전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신드롬을 일으킬 때는 참 신선했어요. 그야말로 30대 0선 정치인이 일으킨 돌개바람은 ‘시대교체’라는 개념 말고는 설명이 되지 않았지요. 그런데 그때 이미 불길한 예감이 들었던 부분은 그가 말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어요. 살며 느껴보니까 다언삭궁(多言數窮)이란 말은 여지없이 들어맞더라고요. 말이 많으면 반드시 곤란한 상황이 오게 돼 있거든요. 아마 ‘말이나 안 하면 중간쯤은 간다’는 말도 거기에서 나왔을 거예요.

 

어떤 랍비(유대교 율법교사)가 제자들에게 상자를 두 개 주면서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로 담아오라고 했대요. 그랬더니 제자들이 두 상자 모두 혀를 가득 담아 왔다던가요?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과연 ‘말은 정치의 시작이요, 끝’이라는 말이 맞긴 맞는 거 같아요. 말이 아니면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설저유부(舌底有斧), ‘혀 밑에 도끼가 들어있다’는 경계만큼은 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다음 대통령 뽑는 일이 혀 밑의 도끼 크기를 재는 일은 아니잖아요? 말을 더듬더라도, 말이 많지 않더라도 오직 가슴에서 나오는 진실만을 말하는, 사리사욕이 없이 국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그런 지도자가 나타났으면 좋겠어요. 자고 나면 터지는, 상대방을 향한 도끼질에만 여념이 없는 이런 시끄러운 후진 정치드라마를 언제까지 참고 봐줘야 하나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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