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죽기 전에 만나야 할 남자, 세르게이 트로파노프’

2021.10.26 06:00:00 13면

월드스타를 낳은 월드뮤직 17

 

 

몰도바에서 6년 유학했다는 아티스트를 만났다. ‘한 남자’ 때문에 죽기 전 가고 싶은 여행지 목록에 올라있는 나라, 몰도바.(‘한 남자’가 궁금하실 당신. 뒤에 풀 예정이니 일단 몰도바 이야기로 직진 부탁한다.)

 

내 주변에 몰디브를 다녀왔다는 사람은 차고 넘치지만 몰도바 여행자는 없었다. 꿈의 여행지 몰도바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내게 아티스트는 찬물을 퍼붓는다.

 

‘볼 거 별로 없어요. 갈 데도 특별히 없구요.’

 

그의 말은 내게 ‘ 만난 사람이 별로 없어요. 특별했던 사람도 없구요’로 번역돼 들렸다. 번역기는 서른 개 넘는 나라를 배낭여행하며 떠돈 내 경험이다.

 

올해 초,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작업실을 만들자 ‘심심하던 차에 건수 생겼다’며 많은 지인들이 놀러 왔다. 환대의 마음으로 헤이리의 ‘나의 최애 공간’을 데려가 구경시켰다. 들꽃 장식으로 디저트를 내주는 피사로의 시간, 융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서양화가의 작업실 소금 항아리, 집시처럼 살고 싶은 욕망을 불 지르는 스페인 맥주집 츄로바 등. 헤이리 일주 후 지인들은 ‘헤이리가 이런 곳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 말에 번역기를 돌린다.

‘예술마을이라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다른 유원지와 비슷하더라. 실망만 안고 돌아갔다. 그런데 너를 통해 숨은 보석 같은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니 헤이리가 특별해졌다’

 

돌아보면 내 나라건 외국이건 그곳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것은 여행지의 인연들이었다. 그 인연들은 그만의 이야기를 품은 그만의 장소로 데려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했다. 행복학 전문가들은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보다 행복지수가 높다고 말한다. 사람 사귀는데 능한 외향적인 이들에게 그만큼 정보, 기회, 이벤트가 많이 주어져 인생이 풍부해진다는 이야기다. 6년간이나 머물렀는데 ‘볼 것 없고 갈 데 없었다’고 말한 몰도바 유학 출신 아티스트는 혹시 내향적 성격 아니었을까. 아니면 공부만 죽도록 한 걸까.

 

몰도바를 죽기 전 꼭 가보고 싶은 나라로 만들어준 ‘한 남자’이야기로 넘어간다.

 

20년 전, 작업실에서 밤을 샌 후, 피폐해진 내 귀를 바이올린 활이 날카롭게 그어버렸다. 지혈을 바라지 않았던 행복한 자상(刺傷).

 

꿀잠 자고 출근하던 후배 작가가 자신이 듣고 있던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려준 것이다. 4분 34초의 광풍이 끝난 후 후배가 생경한 세 단어를 전했다.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예요. 몰도바.’

동유럽 루마니아 옆에 위치한 소국, 몰도바 공화국 태생 바이올린 연주가 세르게이 트로파노프(Sergei Trofanov)의 몰도바(Moldova)라는 곡이라는 것.

 

세르게이 트로파노프. 그 집시 바이올리니스트로 인해 몰도바라는 나라를 알게 되고 몰도바 명물 와인보다 진하다는 집시문화와 팬플룻 소리에 취했다. 오랫동안 깨고 싶지 않던 취기.

 

몰도바 여행을 꿈꾸며 정보를 찾아보면 눈에 들어오는 게 별로 없다. 유럽의 최소국, 최빈국이란 단어들이 눈에 거슬린다. 그래도 꿈은 시들지 않는다. 몰도바를 특별하게 만들어줄 인연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누군지 모를 그와 몰도바 와인을 마시며 몰도바 연주까지 듣는다면!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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