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일의 오지랖] ‘나! 이사람, 보통사람이에요. 믿어주세요’

2021.10.28 06:00:00 13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는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이었고 5·18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한 군 수뇌부 중의 한 명이었다. 국민을 무력으로 진압한 대가는 차고 넘쳤다. 41대 내무부 장관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었고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는 13대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삶은 전두환과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둘은 육사 11기 동기였고 같은 방을 썼던 룸메이트였으며 쿠데타를 모의하고 실행했다. 전두환은 12대 대통령을 마치면서 친구 노태우에게 대권을 물려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아마도 전두환은 노태우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를 원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5공 청산’의 국민적 요구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전두환은 강원도에 있는 백담사로 향했고, 노태우는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려 했다. 전두환의 백담사 생활은 가끔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중계되었다. 나도 승복을 입은 전두환과 이순자의 모습을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전두환은 ‘세상만사를 통달하고’ 산에 의탁한 도인(道人)처럼 굴었는데 젊었던 내가 보기에도 거만하기가 짝이 없었다.

 

‘보통사람’을 자처하던 노태우와,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말로 책임을 회피하던 전두환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죗값을 받는 듯했다. 군사쿠데타와 비자금 사건으로 전두환은 무기징역을, 노태우는 징역 17년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가의 보도(傳家의 寶刀)인 ‘정치적 합의’, ‘국민 통합’ 차원에서 특별사면되었다. 그 후 이 둘은 민정당의 후예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의 새해 인사를 받거나 과거 쿠데타를 함께 했던 동패들과 어울리며 흥청망청 살았다. 하지만 그들의 노년의 삶은 결을 달리하고 있다. 전두환은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혐의로 재판이 진행중이기 때문에 재판을 받기 위해 광주를 방문하고 있으며, 병중에 있었던 노태우는 아들 노재헌을 광주에 다섯 번 보냄으로써 광주시민들에게 사죄했다. 그렇다고 해서 노태우의 잘못한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노재헌씨는 깊은 용서를 구한다는 유언을 남긴 아버지 노태우의 뜻에 따라, 광주시민들이 용서할 때까지 광주를 찾기 바란다.

 

노태우의 죽음을 지켜본 전두환의 심경이 궁금하다. 신문 기사를 보니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고 하는데, 친구의 죽음은 슬퍼할 줄 알면서 모질게 죽임을 당한 광주시민들은 아직도 안중에 없는가 보다. 광주시민들에게 사죄하고 눈물을 흘렸다는 뉴스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두환은 지금이라도 광주시민을 비롯한 국민들께 사죄하고 망월동 묘지를 찾아 무릎 꿇고 잘못을 빌어야 한다. 고령인 전두환의 시간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당연하면서도 정당한 요구를 언제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한단 말인가?

 

임선일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