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하늘의 창(窓)]“파시즘의 명령체계를 깨는 우리 안의 힘”

2021.11.01 06:00:00 16면

 

 

-문맹률 80프로의 사회와 군부 쿠데타 옹호론

 

광주학살로 권력을 움켜쥐고 대통령까지 한 어느 인물이 세상을 뜨자 난데없이 ‘국장(國葬)의 예’를 받았다. 시민사회는 애도의 개인적 차원이야 받아들일 수 있으나 이런 결정은 ‘촛불정부의 자기배반’이라고 비판했고 철회를 요구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도무지 까닭을 알 수 없는 처사였고 두고두고 곤경에 처할 역사적 평가의 논란을 자초했으며 정당화하기 어려운 흠결로 남고 말았다.

 

더군다나 이 국장의 자리에서 그의 치하에 국무총리를 지냈던 인사가 다음의 말을 추모사로 대신했다. 그는 정치학자 출신이기도 하다.

 

“(정규육사 1기생들에게) 한국 정치는 국방의식이 전혀 없는 난장판으로 인식되었고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통치기능에 참여하는 계기였다. 이들은 국민의 문맹률이 거의 80%에 해당하던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현대 문명을 경험하고 한국에 접목시킨 엘리트들이었다.”

 

문맹률 80 프로의 무지한 한국사회에서 가장 선두에 선 엘리트 집단의 불가피한 통치행위였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들의 잔혹한 민간인 학살과 군사 쿠데타는 역사적 합리성을 획득하고 구국(救國)의 일념으로 결단한 위대한 정치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책임은 절대다수 문맹 국민들에게 있을 뿐, 이들 군부세력에게 그 어떤 사적 탐욕이나 권력욕은 없었다는 것이다. 명백한 “파시즘 옹호 논리”다.

 

게다가 이런 논리로 이들은 최초로 현대 문명을 경험, 한국사회에 접목시킨 기여자가 된다. 정부의 국장 결정은 이런 발언을 받쳐준 역할을 하고 만 것이다. 이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세력의 뿌리는 일차적으로 관동군으로 들어가 일본 제국주의의 첨병이 되었던 세력에게 있으며, 이후 미군의 관리 아래 자라나고 월남전에서 영관급으로 베트남 전쟁을 수행했던 군부세대가 그 중심에 섰다. 이른바 바로 그 정규 육사 1기다. 미국의 요구에 의해 우리 군이 파병되었던 월남전은 군부세력에게 거액의 돈을 만질 수 있게 했으며 초토화 전략과 양민학살의 경험을 주었다. 정치군부의 부패와 잔혹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러니 광주학살은 이들의 머릿속에 이미 들어 있는 작전이었다. 권력자의 자리에서 퇴장된 이후 이들이 막대한 비리로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했던 것 역시 이러한 경로의 당연한 결과였다. 이런 판국에 저 추모사는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깡그리 무시했고 그 사회의 수준 향상을 소위 군부 엘리트가 이끌 수 있다고 주장, 폭력과 야만적 지배에 맞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일체의 사상과 행동을 ‘난장판’으로 몰아세웠다. 그건 무식한 자들의 무지한 짓이 된 것이다.

 

 

- 제국의 질서를 따르라

 

이론적으로 보자면 이 발언을 한 이가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할 때 주류는 이른바 근대화 이론, 발전이론, 비교정치학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정치이론이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과 서구의 경험을 그대로 따라오면 제3세계는 그런 선진국들처럼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제국의 질서를 따르라. 그리하면 복이 있나니”이다.

 

미국 유학파들은 이렇게 일제가 퇴각당한 뒤 새로운 식민지 정치와 교육의 거점 세력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흔히들 “서구 민주주의와 시장의 자유가 결합”된 이론이라고 알려진 이 미국발 사회과학의 내부에는 군사 쿠데타 옹호론이 본질적으로 깔려 있었다. 어떻게 된 셈일까? 민주주의와 군부통치 파시즘은 서로 적대적인데 왜 그런 걸까?

 

 

1945년 종전(終戰)과 함께 시동을 건 트루만의 냉전정책인 억제전략(Containment Policy), ‘대규모 보복반격(massive retaliation)’을 바탕에 깔고 소비에트 연방을 핵무기로 압도하려던 아이젠하워의 “뉴룩(New Look) 정책”을 거쳐 케네디의 “저강도 전쟁 전략(low-intensity warfare strategy)”은 제3세계 군부육성전략의 기초가 되었다. 트루만과 아이젠하워로 미국의 세계정책에 굵직한 기조가 완성되었다면 케네디에 이르러서는 미국이 중심이 된 제국의 질서에 저항하는 제3세계 민족해방 세력을 제압하는 전략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1898년 스페인 제국과의 전쟁으로 획득한 식민지 쿠바에서 1959년 카스트로 혁명이 일어난 것은 미국에게 충격이었고, 구(舊) 식민지에서 벌어진 자주노선과 사회주의 혁명의 결합은 친미 민간인 세력을 중심으로 한 체제의 한계를 인식하게 했다. “저강도 전쟁 전략”은 이들 민족해방세력을 물리적으로 진압하기 위한 군부육성정책과 개입전략의 모태였다. 이런 기반 없이 미국이 지탱하려는 세계자본주의로 표방되는 제국의 질서는 타격을 받기 때문이었다.

 

 

바로 여기서 미국 자본주의 질서 이식과 군부통치가 하나로 되는 제3세계 정치체제가 고안된다. 매우 빠른 속도로 압축성장이 가능하다는 경제발전단계론이 주창되고, 이를 지휘할 세력은 현대 자본주의 체제의 질서 유지 훈련을 받은 군부 엘리트가 주목된다. 이론적으로는 “도약(take-off) 이론”을 내세운 로스토우(Walt Whitman Rostow)의 <경제성장의 단계론/반공산주의 선언 (The Stages of Economic Growth: A non-communist manifesto)>과 같은 논리가 널리 선전되었다.

 

그런데 이 도약과 압축성장은 대자본의 빠른 형성과 고강도의 노동집약적 구조로 가능해진다. 그러자면 자연 노동의 통제가 그 핵심이 되고 이를 강제화시킬 수 있는 세력은 군부일 수밖에 없다. 미국 자본주의의 내부로 흡수되는 제3세계 대자본의 든든한 뒷배이자 동맹세력인 군부가 지배하는 체제와 이를 유지하기 위해 희생되는 노동계급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파시즘 체제다.

 

특권 재벌과 이를 위해 희생하는 노동을 위계적으로 질서화하는 기능을 군부가 맡게 된 것이다. 한국정치사에서 5.16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체제의 본질은 여기에 있다.

 

 

-제국의 사제, 제국의 전도자들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무엘 헌팅톤(Samuel Huntington)은 비교정치학, 근대화 발전이론의 교과서처럼 읽힌 <변화하는 사회의 정치질서(Political Order in the Changing Societies)>라는 저서에서 군부의 정치지도력이 제3세계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는 주장을 강조했다. 문명충돌론도 서구 문명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적 이론이고 그의 정치이론도 사실상 미국의 자본주의 세계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제3세계 군부통치 정당화를 민주주의 정치이론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제국의 사제(司祭)”가 도처에 뿌린 제국의 전도서다.

 

문제는 이런 논리들을 금과옥조처럼 두뇌 속에 집어넣고 들어와 “미성숙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군부의 정치적 개입과 책임은 불가피했다”는 식민지 논리와 궤변을 설파하는 자들이 행세 꽤나 하는 자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무고한 국민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한 자들로 여전히 이 나라 특권 동맹의 주력부대다.

 

이들이 지휘해온 교육은 미국의 질서를 보편의 질서로 인식하게 하고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파열을 내던지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을 선동과 편향, 과격과 정치화된 교육으로 못박고 있다. 미국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렀는지는 이들에게 안중에도 없다.

 

미국의 군부육성 기관인 웨스트포인트에서 역사교육을 해왔던 다니엘 서젠(Daniel Sjursen)은 그의 최근 저서 <미국의 진실, 그 역사적 본질 (A True History of the United States)>에서 <미국 민중사(People’s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쓴 하워드 진 (Howard Zinn) 못지않게 미국역사의 정체를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다.

 

다니엘 서젠은 유럽의 종교탄압을 피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피난 온 이들의 출발로 이뤄진 건국신화를 벗겨낸다. 그는 1670년경 영국의 귀족들과 자본가들이 투자한 “버지니아 주식회사(Virginia Company)”가 땅을 약탈하면서 벌인 원주민 살육전이 미국의 인종주의와 계급구조의 시초가 되었으며 청교도들의 종교적 열광주의가 여기에 결합해서 야만적 자본주의의 토대를 만들었다고 본다.

 

이는 흑인 민권 투쟁가 말콤 X가 그토록 규탄했던 ‘백인 우월주의(White Supremacy)’의 역사적 뿌리이자 <미국 파시즘의 도래(The Coming of the American Behemoth)>를 쓴 마이클 조셉 로베르토의 논지이며 계급차별, 인종차별, 대자본의 특권 동맹의 힘으로 등장했던 트럼프의 지지 구조다.

 

이런 현상과 현실은 우리의 지금과 무관하지 않다. 냉전정치의 폭력과 차별유지의 특권 동맹, 권력기관의 압도적 지배를 통해 그들만의 우월주의(Supremacy)를 추구하는 파시즘 세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기 위해 촛불혁명의 과정을 뒤엎기 위해 총반격전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자본주의의 명령체계”를 견고하게 다지기 위한 정치를 추구하고 있다.

 

 

-자본의 명령체계를 이기는 힘은?

 

마르크스의 '소외(alienation)' 개념을 집중적으로 논파했던 이스트반 메자로스(Istvan Mesaros)의 <자본을 넘어 : 전환이론을 향해(Beyond Capital : Towards a Theory of Transition)>는 “자본”을 복종을 요구하는 명령체계로 인식한다. 이는 기본적으로 ‘가난을 생산하는 착취구조의 명령질서(the poverty-producing exploitative structural impertives)’를 내장하고 있기 때문에 이로 인해 피해를 입게 되는 입장에서는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체제다.

 

 

따라서 모든 질서의 본질은 상하 복종을 강제화하는 “자본의 위계적 명령구조(hierachical command structure of capital)”로 되어 있으며 이는 민주주의를 지배하는 특권체제가 그 중심에 있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자본주의 정치는 구조적으로 파시즘의 고리에 걸려 있다. 자본주의 국가론을 이렇게 파악했던 니코스 플란차스(Nicos Poulantzas)의 정치경제학은 따라서 여전히 유효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소스타인 베블렌(Thorstein Veblen)의 명저 <유한계급론>이 일깨우는 것처럼 언제든 파시즘 세력으로 변모할 수 있는 이들 특권 동맹체제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땀을 흘리며 살아가는 이들의 피를 빨고 불로소득을 챙기는 “유한(有閑)의 기생세력”이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는 이들 기생세력의 서식처다. 그리고 언제든 우리의 몸을 장악하고 우리의 정신을 휘둘러 자신들의 뜻대로 우리를 움직이고 피폐시켜 “생명의 신진대사”를 막는 자들이다.

 

 

어떤 시대도 이러한 기생세력이 있게 마련이나 이를 척결하는 논리와 운동도 끊임없이 등장하고 진화했다. 반계 유형원의 균전법(均田法)이나 이익의 한전법(限田法)이 농토의 공유(公有)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는 사유지 확대를 막는 반면, 일하지 않는 자까지 공평하게 주거나 소유 토지 규모에 제한을 두는 수준에 그친다는 점에서 비판의 지점이 생긴다. 이에 따라 다산 정약용이 농사짓지 않는 자에게는 토지를 주지 않는다는 기본 위에 내세워 마을 단위로 묶은 “여전제(閭田制)”는 지금도 매우 혁신적이다.

 

한마디로 기생세력의 척결이 그 근본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발상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령 율곡 이이가 오래전부터 정통이라고 여겨온 “조종지법(祖宗之法)”이라도 시대에 따라 변법(變法)의 이유가 있으면 바꿔야 한다며 변혁의 출구를 열었던 것에서 시작하여 박지원이나 홍대용처럼 이미 정해진 세계의 중심이 따로 있다는 화이사상(華夷思想)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세상을 품되 자기 자신의 자리에서 주체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인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있어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 현실에서 “조종지법(祖宗之法)”이며 미국은 "화이사상(華夷思想)의 중심"에 놓여 있는 발상에서는 파시즘의 명령체계에 복종하는 인민(人民)만을 기를 뿐이다. 군사정부의 국무총리를 지냈던 한 정치학자 출신의 저런 망발과 망언이 용납되는 사회는 문맹률 0프로라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주체적 확신이다.

 

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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