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마음을 세탁하는 리베라 소년 합창단의 Always with you’

2021.11.01 06:00:00 13면

월드스타를 낳은 월드뮤직 18

 

‘무조건 하얀색으로 덮어. 끝’ 인생 첫 집을 장만해 들떠있는 친구의 인테리어 조언 요구에 대한 나의 답이다. "병실이냐? 하얀색으로 도배하게? 요즘 병실도 '꽃가라‘로 예쁘게 하더만!"

내 말을 질투(?)로 받는 친구에게 진의를 전하기 위해 오래전 경험담을 풀었다.

 

10년 전, 뉴질랜드 남섬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에서 2주간 현지살이를 한 적이 있다. 열다섯 평 정도 되는 작은 연립주택은 렌트 전용이라 소파, 침대, 옷장, 오븐이 다였다. 도착 첫날, 저녁을 해먹기 위해 세컨핸드 샵(우리로 치면 중고가게)에서 식기를 사오면서 생경하고 불안한 기분에 휩싸였다. ‘2주간이지만 그래도 먹고 살 집인데 뭔가 더 사고 들여야 하지 않나’ 같은 강박적 생각들이 올라온 것이다.

 

2주가 지난 후의 깨달음은 내 반평생에 내려친 불가의 죽비였다. 

‘아무것도 없어도 아무렇지 않구나!’

 

내 아파트가 떠올랐다. 방 4개는 물론, 현관부터 늘어선 생활용품, 장식품, 언제 쓸지 몰라 일단 쟁여놓은 물건들...... 모두 필수품이라고 생각해 수 차례의 이사 동안 끌고 다녔던 것이 다 무엇이었나. 매일이 산만하고 인생이 복잡했던 게 혹 그 적재물들 때문 아니었을까. 뉴질랜드 집의 벽처럼 하얀 소파에 앉아있으면 마치 햇살 따스한 흰모래밭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생각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제일 먼저 집 안을 비우리라. 오래된 벽지와 커튼을 하얀색으로 바꾸리라.

 

결론부터 말하면 대성공. 매일 뉴질랜드 거실처럼 희고 텅 빈 공간에서 맞는 아침은 반생을 ‘이 평화를 모르고 살아온 날들’을 억울하게 한다.

 

한 달 후 인테리어 공사를 끝낸 친구의 초대를 받았다. 희고 텅 빈 공간 한쪽에 놓인 푸른색 의자가 사막도시에서도 자라는 박하풀처럼 보였다. 빈 손으로 온 것을 타박하는 친구에게 (갑자기 호출한 자신의 호들갑은 잊고) 음악 선물을 했다. ‘ 친구야. 희고 텅 비어서 신비롭게까지 보이는 이 공간에 어울리는 곡이야’

 

핸드폰을 통해 영국 리베라 소년 합창단의 ‘ Always with you’가 흐른다. 친구가 내리는 커피향과 함께 빈 거실을 가득 채운다. 리베라 소년들이 이 노래 부를 때 모습처럼 흰 커튼 아래 흰 커피잔을 들고 고개 숙여 차를 마시던 친구의 눈가가 젖어온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나도 그랬다.

왜 순수는 인간을 울리는가.

 

세상의 때를 씻어주는 회당에서 세상의 때 묻지 않은 소년들이 찌들고 다치고 부서진 어른들에게 ‘Always with you’라고 속삭인다. 곡이 끝나면 마음 세탁기에 탈수 코스까지 마치고 나온 느낌이다. 영상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I am the day나 Ave Maria도 좋다. 리베라 소년합창단 노래들의 후유증은 ‘당분간 다른 노래들을 듣고 싶지 않게 만든다’는 것. 친구의 하얀 집에 눈 내릴 때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그때는 집들이 선물과 함께.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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