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아나톨리 김

2021.11.10 06:00:00 13면

 

선생은 당대 러시아 소설가로서 대문호 톨스토이와 솔제니친 등을 잇는 현존 최고의 작가다. 1939년생으로 여든 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정력적으로 쓴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미술대학, 고리끼 문학대학에서 공부했다.

 

6공 때 한-러 수교 덕분에, 1989년 9월, 세계 한민족 체전 참가자의 일원으로 우리 정부가 보낸 전용기를 타고 '조국' 땅을 밟는다. 100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는 돌아가면서 친구 인 번역가 김근식 교수에게 자신의 뿌리를 확인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 얼마 후 실로 경천동지 할만한 편지를 받게 된다.

 

"고개 숙여 존경하는 시인이여! 


이렇게 하여 나는 당신의 후예임을 알아내고 한없이 기뻤습니다. 이제 내 운명에서 풀리지 않았던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의 결심과 행동으로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왔던 나는 결국 많은 면에서 당신의 길을 따랐던 것입니다. 이 놀 라운 소식에 형언키 어려운 기쁨을 느끼면서도 어이하여 나는 울적한 마음을 금치 못하는 것일까요?"

 

김시습이 아나톨리 김의 17대 직조(直祖)였던 것이다. 이 문장은 선생이 당시 한 일간지에 기고했던 에세이 "나는 한국인인가, 러시아인인가?"의 첫대목이다. 그 기사를 읽으면서 울컥했다. 길고 크게 전율했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도 그 감탄 그대로다. 피는 못 속인다. 나는  그때 족보학이 정밀과학임을 깨달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선생은 1991년부터 1995년까지 중앙대에 노문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장기체류 기회를 얻었다. 이 기간 동안 조상이 떠돌며 머물렀던 곳들을 두루 찾아다녔다. '매월당 방랑 코스'를 답습함으로써 조선 최고의 자부심을 유산으로 갖게 되었다. 선생은 그 가치를 '조상의 음덕'이라고 말한다.

 

선조가 1435년생이고, 후생이 1939년생이니 이 희대의 천재 조손간(祖孫間)은 500년 굴곡진 세월이 쌓은 진귀한 문화사(文化史)의 퇴적층이 되었다. 조상은 이 좁은 땅 방방곡곡을 통한을 달래며 방랑했고, 후손은 민들레 홀씨 되어 저 멀리 날아가서 이 세상 절반의 땅 한가운데 우뚝 선 것이다. 큰 빛으로.

 

 

그는 1973년 단편 '수채화'로 등단, 1993년 소설 '다람쥐'로 톨스토이 문학상, 모스크바 예술상을 수상하며 정상에 오른다. 1995년부터 2년 동안 톨스토이 재단에서 발간하는 문학잡지 '야스나 폴랴나'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작품들은 30개 언어로 번역되어 있으며, 솔제니친 이후, 러시아 문학에 노벨상이 주어진다면 선생이 그 주인공이 될 것이라 한다.

 

이 글을 대통령 후보들, 특히 윤석열이 읽으면 좋겠다. 역사의식과 그에 걸맞은 품격으로 경쟁하는 걸 보고 싶다. 나의 기대가 지나친가. 씨름은 힘과 기술이지만, 동서고금을 통틀어 정치는 문사철(文史哲) 앞에서 겸허함으로써만 성공한다. 그대는 지금 그 철칙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있다.

오세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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