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페드라 ‘내 사랑’

2021.12.06 06:00:00 13면

영화 속의 월드뮤직 2

 

불륜과 혼외자.

드러나는 순간 사회적 인간으로서 종신형에 처해진다는 것을 또 한 번 확인했다. 더불어 민주당이 대선 영입 인재 1호로 내세운 조동연 씨가 전국에서 날아든 돌팔매를 못 견디고 결국 사흘 만에 자진 사퇴했다. 조 씨 사퇴 후 ‘선출직 공직 후보자도 아닌데 과거의 사생활로 전 국민 앞에서 공격받고 망신당하는 게 온당한가’라는 질문을 곱씹는다. 정치와 국민정서의 냉엄한 현실이라고 하자. 이제 그 현실에 손절한 이후의 조 씨와 아들의 삶은 어찌할 것인가.

 

사회적 사건에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게 문학과 예술이다. 삶은 수학처럼 공식과 정답이 있을 수 없고 모든 문제는 시대, 문화에 따라 달리 해석되며 인간의 죄 역시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이주일 이상 걷지 않고서는 그 인간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인디언 속담처럼 속단하지 말라는 게 문학과 예술이다.

 

사랑과 불륜 이야기가 넘쳐나는 영화에서도 걸작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힌다. 배경음악 때문에 나를 미치게 한 페드라(Phaedra)가 떠오른다.

 

남편의 전처 자식을 사랑한 비극, 그리스 신화 파이드라와 히폴리투스 이야기는 1962년, 미국 천재 감독 줄스 다신에 의해 영화화됐다. ‘천재 감독’이라는 찬사는 내가 붙였다. 영화광인 나의 걸작 선정기준은 ‘단 한순간도 클리셰 (과거 썼던 진부한 방식이나 내용)를 드러내지 않는 작품’인데 영화 페드라도 그랬다.

 

신화 속 파이드라처럼 그리스 해운업계 실력자 타노스의 아내인 페드라는 전처 아들인 런던 유학생 알렉시스와 사랑에 빠진다. 부귀영화와 남편의 끔찍한 사랑에도 삶이 가치 없었던 페드라에게 알렉시스와의 사랑은 살아갈 이유였는데 이를 꿈에도 모르는 남편이 아들을 정략결혼시키려 한다. 이 결혼을 막기 위해 남편에게 모든 비밀을 폭로해버리는 페드라. 분기탱천한 남편에게 폭행당한 아들은 충격 속에 차를 몰고 질주하다 추락사한다. 이를 알게 된 페드라, 그 길로 삶을 놓아버린다.

 

영화 페드라의 이야기를 신문 보도식으로 전하면 ‘ 남편의 전처 아들과 불륜행각 끝에 모두 자살’ 정도가 될 것이다. 막장 불륜 자살녀를 안나 카레니나란 소설을 통해 인간 이해를 확장시킨 톨스토이처럼 감독 줄스 다신은 페드라를 통해 성공한 영웅담이 아닌 정직하게 패배한 인간의 삶도 감동과 의미를 줄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페드라는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감정이 이끄는대로 행동했고 그로 인해 세상이 내린 죄와 벌을 받아들였다. 저주받은 삶과 사랑을 페드라 방식으로 맞섰다.

 

줄스 다신은 그 메시지를 인물의 입을 통해 말하지 않는다. 예상되는 전개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스의 부서지는 태양, 계절과 밤낮에 따라 달리 보이는 백사장과 바다, 그리고 줄스 다신이 만들고 선곡한 음악이 인물이 말하지 못한 것, 드러내지 않는 것을 전한다.

 

그게 관객을 설득시켜 영화 페드라를 막장 불륜 이야기가 아닌 인간 이해를 확장시킨 걸작으로 만들었다.

 

알렉시스와 사랑을 확인한 후 피아노 앞에서 부르는 페드라의 주제곡 ‘아가피 무(Agapi Mou)’가 사랑의 명곡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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