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흑인 오르페 ‘카니발의 아침’

2021.12.13 06:00:00 13면

영화 속의 월드뮤직 3

 

 

 

축제 끝난 이른 아침을 기억하는가. 광란의 밤이 훑고 간 취기 남은 몽롱한 눈앞에 펼쳐지는 일상이 갑자기 낯설다. 어깨 비듬을 털며 지하도로 내려가는 사람들, 상가 셔터를 올리고 째지게 하품하는 상인들, 도로를 메워가는 자동차들...... 꿈이었던가. 지난밤이 전생인 듯 하다.

 

그 생경한 아침의 감정을 말과 글로 풀면 반이나 전할까. 그럴 때 도와주는 음악이 있다. 영화 흑인 오르페(Black Orpheus)의 주제곡 ‘카니발의 아침’. 인생에서 몇 번 안 될 그 생경한 순간의 감정을 넘치게 표현해준다.

 

영화 ‘흑인 오르페(감독 마르셀 까뮈)’는 1959년에 만들어져 우리나라에는 60년대 들어왔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영화,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는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 이야기겠지만) 80년대 청춘을 보낸 나는, 지난 영화는 볼 수가 없어 심야 라디오를 통해 영화도, 음악도 처음 알게 되었다.

 

DJ가 영화 소개를 장황하게 했는데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디스의 비극에서 소재를 따왔으며 무대를 브라질로 옮겨 만들었다’ 정도만 기억난다. 음악이 나오자 공기가 달라졌다. 전주에 기타소리에 맞춰 여가수의 허밍이 나오는데 절로 눈이 감겼다. 허밍은 1분 넘게 이어진다. 노랫말이 시작되면서 ‘세상에 이런 목소리가 있었던가’ 하는 찬탄이 터졌다. 쓸쓸하고 애절하면서도 씁쓸하고 감미로운..... 영화가 간절히 보고 싶어졌다.

 

뒷날 (지금 젊은 세대에게 또 한 번 생소하겠지만) 대여점에서 빌린 영화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겨우 보게 됐다. 관람 직전에는 기대가 더 높았다. 알고 보니 59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 60년 아카데미 영화제,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등 유수의 영화제를 휩쓴 화제작이었다. 본 감상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망.

 

평론가들은 서양인의 서사를 브라질 삼바축제를 무대로 그려낸 이색적 아이디어, 또 흑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도발적 시도에 주목했을 것이고 더불어 올로케이션으로 찍었다는 삼바 축제, 삼바, 보사노바 등 브라질 음악의 매혹 등에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싶다.

 

그 점엔 동의하지만 (신화 소재라 클리셰는 피할 수 없었겠지만) 사랑의 기승전결이 너무 쉽고 뻔했다. 50년대 제작한 시대 상황을 감안해야 하나? 아니다. 그 전 흑백영화 중 탁월한 작품이 얼마나 많은데!

 

어쨌든 내게 흑인 오르페는 나자리노(레오나르도 파비오 감독), 빌리티스( 데이비드 해밀턴 감독)같은 영화처럼 음악만큼은 좋지 않았던 작품으로 남았다.

 

그래도 영화의 실망이 ‘카니발의 아침’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광기와 환락의 축제가 어둠과 함께 물러간 아침 이미지와 보사노바 리듬의 협주는 어떤 걸작도 쉽게 남기지 못할 명장면이다. 보사노바는 삼바에 재즈를 섞어 만든 음악장르로 브라질에서 50년대에 탄생했다. 이 영화에 참여한 음악가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은 보사노바 창시자 중 한 사람. 보사노바의 매력이 세상에 알려진데는 흑인 오르페의 주제곡 ‘카니발의 아침’의 영향이 컸다. 엘리제테 카르도소(Elizete Cardoso)의 목소리가 주는 전율을 바로 경험해보시길!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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