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윤의 좌충우돌] 그림자 양육

2021.12.15 06:00:00 13면

 

 

첫아이 소풍 도시락을 호들갑 떨며 싸던 때가 있었다. 새 모이 마냥 밥 몇 숟갈 먹는 아이인데 잔칫상 차리듯 준비했다. 쪽잠을 자고 새벽같이 일어나 재료를 손질했다. 오색 꼬마 김밥, 별 모양 소고기 주먹밥, 메추리알로 만든 병아리, 햄과 채소를 꽃잎처럼 오려낸 샐러드를 담았다. 내 아이만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도시락이었다. 엄마가 처음이라 그게 최선의 모성애인 줄 알았다.

 

그 아이가 다섯 살 무렵 나는 병설유치원 특수학급에서 일했다. 공교롭게도 첫애와 같은 해에 태어난 아이들을 맡았다. 그래서인지 내 눈에는 덩치만 컸지 아직 아기들로 보였다. 엄마 품을 떠나 규범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게 짠하고 뭉클하고 안타깝고 대견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교사라기보다 엄마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해 봄날 아이들과 소풍을 갔다. 점심이 되어 각자 집에서 보내온 도시락을 가지고 모둠으로 둘러앉았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한 녀석이 뭉그적대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조막만한 손을 만지작거릴 뿐 가방에서 도시락을 꺼내지 않았다. 교사의 재촉에 내놓은 건 검정 비닐봉지에 든 떡 한 팩, 소풍 도시락이었다.

 

뭔지 모를 부끄러움이 그 순간 나를 멈춰 세웠다. 뭐든 나눠 먹어야 맛있다며 너스레 떨었지만 복잡 미묘했다. 친구들 음식을 권했지만 아이는 완강히 거부했다.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굳은 백설기만 떼어먹는데 저 어린것이 자존심이 있구나 싶었다. 그제야 둘러보니 도시락은 계층과 계급을 담고 있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내 아이를 위한 것이야’라며 저마다 모성의 서사를 말하는 듯했다.

 

그 서사는 김치 국물에 빨갛게 물든 밥이 부끄러워 도시락 뚜껑을 열 때마다 주눅이 들던 어린 나를 소환했다. 나는 소시지 부침과 계란말이 도시락을 싸오는 얘들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곤 하던 아이였다. ‘신이 인간을 일일이 돌볼 수 없어 엄마를 보냈다’지만, 엄마도 형편에 묶인 인간인지라 결핍과 과잉의 경계를 오간다. 나는 내 성장 결핍이 아이에게 욕망으로 투사되지 않도록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다. 양육이 아닌 관계에 방점을 찍어 내 있을 자리를 정했다.

 

나는 내 아이에게 너무 잘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무심한 부모, 의도된 방임, 보편적 모성애, 뭐 대충 그런 엄마가 되고자 했다. 지켜보되 내버려 둔다. 아이의 삶에 적극 개입하지 않는다. 존재의 빛나는 존엄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되기로 했다. 스스로 "그림자 양육"이라 합리화했다.

 

첫 받아쓰기에서 50점을 받아도 기죽지 않고 “엄마, 절반이나 맞췄어” 자랑하는 아이가 나도 자랑스러웠다. 아이는 자라서 자기 감수성을 지키며 살고 있고 자식은 내버려 두면 자기 길을 찾아간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 온전한 삶을 찾은 건 오히려 나였다. 엄마의 시간, “모성”이라는 자기 억압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박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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