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스모그 속을 헤쳐 나가는 여러 인물의 모습, ‘두고 온 것’

2021.12.16 06:00:00 11면

 

◆ 두고 온 것 / 강영숙 / 문학동네 / 264쪽 / 1만3500원

 

막막함. ‘두고 온 것’에 수록된 소설 속 인물들을 둘러싼 현실이 딱 그렇다. 미세먼지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서 조류독감이나 구제역과 같은 바이러스, 질환이나 실직처럼 개인에게 닥친 불행까지 많은 재난들이 인물들을 가로 막고 있다. 희뿌연 스모그처럼.

 

표제작인 ‘두고 온 것’의 주인공 ‘민수’는 아내 ‘진영’과 함께 묵었던 ‘H호텔’ 안을 헤맨다. 지금은 폐허가 된 곳이지만, 이상행동을 보이다 폐쇄병동에 입원한 아내를 되돌릴 방법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민수는 기대한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것은 호텔처럼 엉망이 된 자신의 모습뿐이다. 외국에 보낼 중요한 상품 샘플을 잃어버린 뒤 해고당한 민수는 이후로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착란을 일으키고,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도 잊은 채 호텔 안을 맴돈다.

 

‘낙산’과 ‘스모그를 뚫고’를 통해 불행을 겪고 떠도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낙산’의 화자 ‘나’는 임신중단 수술을 받은 뒤 낙산 일대를 배회하며 그곳의 풍경을 관망한다. 인근 절벽마을에 위치한 ‘나’의 원룸은 열악하기 짝이 없고, 삶은 여유가 없다.

 

‘스모그를 뚫고’의 ‘지영’, ‘상혁’ 부부는 구 주택단지에 살며 신도시 고층 아파트에서의 삶을 꿈꾼다. 하지만 꿈을 향해 가는 길엔 트라우마로 남은 옛 애인과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짐승들처럼 자신도 땅속에 파묻힐지 모른다는 공포뿐이다.

 

‘후암 이후’와 ‘더러운 물탱크’는 실직을 겪은 중년 여성 화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후암 이후’의 ‘영주’는 높은 연차로, 이제 그만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란 말과 함께 해고당한다. 이후 부동산중개사인 친구 대신 부동산을 관리하며 비어 있는 남의 회사에 무단 침입하곤 한다. 어느 날, 손님으로 방문했던 한 여성이 무허가주택의 방을 무단 점거하고 있다는 소식에 그곳으로 향하고, 술에 취해 널브러져 잠든 여성의 모습에 자신을 겹쳐 본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사직을 권고 받은 ‘더러운 물탱크’의 ‘미스 수’는 시청 인근을 서성이다 ‘극지연구소’행 버스에 오르지만, 그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는 흉한 공터이다.

 

하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각자의 불행에 갇혀 있지 않고 한 발짝 나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곡부 이후’의 ‘진석’은 중국 곡부에서 실종된 ‘정대리’를 찾아 그의 종적을 되짚는다. 그 여정 속에서 그는 회사가 무섭다고 말하던 정대리를 점차 이해하게 되고, 애써 외면하고 숨기려 했던 자신의 연약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사막도시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라플린’의 ‘나’는 햇빛을 받으면 상태가 악화되는 병 ‘루푸스’를 앓고 있다. 어느날 브로커의 의뢰로 죽음을 앞둔 노인 부부를 유기하는 일을 맡은 ‘나’는 도시를 순례한 끝에 돌아와 자신의 죽음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를 찾아온 건 죽음이 아닌 아침이다. 그는 일출을 바라보며 다음의 또 다른 아침도 맞이할 것을 다짐한다.

 

인물들은 각자의 이유로 ‘두고 온 것’을 찾아 길을 헤매지만, 되찾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그저 그 길 위를 걸어가는 그들을 묵묵하게 풀어낸다.

 

[ 경기신문 = 정경아 수습기자 ]

정경아 수습기자 kyunga1013@kgnews.co.kr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