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최대규모로 수원 찾은 ‘어윈 올라프: 완전한 순간-불완전한 세계’ 展

2021.12.21 06:00:00 16면

한국-네덜란드 수교 60주년 기념
대표작 등 총 110여 점 작품 전시
수원시립미술관서 내년 3월 20일까지

네덜란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세계적 동시대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Erwin Olaf)의 작품이 한국을 찾았다. 수원시립미술관(관장 김진엽)의 2021 한국-네덜란드 수교 60주년 기념전 ‘어윈 올라프: 완전한 순간-불완전한 세계’다. 올라프의 작품이 간간히 한국에서 전시된 적은 있지만, 그의 대표작을 포함해 네덜란드 라익스뮤지엄 특별섹션 작품까지 무려 110여 점이나 온 것은 국내를 넘어 아시아 최초이다. <편집자 주>

 

 

숲 속 드넓은 호수 위 오리 배에 올라탄 여인이 우산을 들고 서 있다. 또 다른 한 손에는 플라스틱 가방을 들고 있다. 저 짙은 안개 속에서 우산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차디찬 물 한가운데서 가방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초현실적 이미지로 사회구조와 문제를 담아내는 사진작가 ‘어윈 올라프’의 최근작 ‘숲속에서’ 시리즈이다. 시리즈의 다른 작품인 ‘폭포에서’, ‘호수에서’ 등에서는 흑백의 평화로운 자연 풍경과 함께인 모델들이 헤드폰을 끼고 있거나 셀피를 찍고, 명품가방을 들고 있기도 하다.

 

자연을 경시하는 인간의 모습이 나타나지만, 겹겹이 치솟은 산봉우리는 대자연 앞에 한없이 작은 인간의 존재를 느끼게 한다.

 

작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 외에도 개인의 감정과 소통의 단절, 인종 차별 등 다양한 이슈를 이미지로 표현해왔다. 이런 정치/사회적 메시지를 과감하게 발언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위더레흐트(Utrecth)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는 1980년대부터 매 시기마다 자신의 고민을 고스란히 작품에 반영했다.

 

 

이번 전시는 네덜란드 국립미술관인 라익스뮤지엄 ‘12인의 거장과 어윈 올라프’ 전을 소개하는 특별 섹션을 포함해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라익스뮤지엄에 전시된 회화들을 감상하며 많은 영감을 얻었다. 특별전에서는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과 현시대를 보여주는 작가의 작품을 나란히 전시했다.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시각화할지에 대한 명암과 색채, 인물의 표정과 자세 등의 고민은 당대의 거장들이든 지금의 작가든 같은 부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 담당자인 박현진 큐레이터는 “17세기와 2000년대 작품을 나란히 배치해 비교해보며 어느 시기, 어떤 매체를 활용했는지와 상관없이 화가와 사진작가가 공통적으로 고민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약 300년의 차이를 둔 작품 간의 소통으로 작가는 그 고민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1부 ‘순간: 서사적 연출’에서는 인간의 감정을 담은 2000년대 초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비(2004)’, ‘비탄(2007)’ 등 잘 정돈된 실내와 잘 차려입은 인물과는 대조적인 슬픈 표정과 절망적인 자세에서 우리는 인물이 처한 상황들을 추측해보게 된다.

 

작년에 발표돼 많은 관심을 받았던 ‘만우절(2020)’도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벌어진 믿기 힘든 현실을 나타냈다.

 

‘9:30’, ‘9:45’의 작품명처럼 작가가 이동하며 각 시각마다 텅 빈 마트 진열대, 텅 빈 주차장의 거짓말 같은 현재를 표현했다.

 

이 공포스러운 상황이 마치 거짓말이기를 바라는 발버둥인 동시에, ‘바이러스’ 하나에 사회 전체가 셧다운된 우리 인간들의 오만함을 동시에 지적한다.

 

 

 

2부 ‘도시: 판타지 사이’는 급변하는 도시 속에서 인물들이 경험하는 불완전한 변화와 외로움을 포착했다. ‘베를린(2012)’에서는 아이와 어른의 위치가 교체된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을 손을 잡고 어른을 둥글게 에워싸고 있다. 어른은 눈이 가려진채 무릎을 꿇은 무력한 인물로 표현된다. ‘상하이(2017)’에서는 소통의 단절이 두드러진다. 급속한 문명의 발전으로 생겨난 서로간의 무관심과 인간 사이 단절이 나타난다.

 

‘팜스프링스(2018)’를 통해서는 다양한 색채를 보여주는데, 화려한 외양과 달리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빈부격차 등 누군가에게는 전혀 다른 장소가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3부는 작가가 스튜디오를 벗어나 인간의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들을 실제로 찾아가 작업했던 작품들이다. ‘숲속에서’ 시리즈를 통해 대자연 앞에 오만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작품에 참여한 모델들의 사진도 전시됐다. 문신 가득한 뱃사공과 히잡을 쓴 여인을 통해 작가는 자연이 주었던 모습을 가리고 바꾼 대표적 사례를 보여주고자 했다.

 

 

관람객이 만나는 것은 단 한 장의 ‘정적인 순간’이지만, 그것을 하나의 이미지로 전달하기 위해 작가는 매우 치열하게 고민했다.

 

박현진 큐레이터는 “한 장의 사진 작품을 위해 40~50명이 스태프들이 투입된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자세와 표정, 배경까지 세세히 감독하며 작품을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 고민의 흔적은 전시 마지막 미디어 룸에 설치된 메이킹 영상을 통해 관람객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김진엽 관장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시대의 담론을 담는 작업을 지속해 온 작가의 대표작을 통해 그가 평생에 걸쳐 추구해 온 완전한 순간과 불완전한 세계가 어떻게 변화돼 왔는지 살펴볼 자리가 될 것이다”고 밝혔다.

 

지난 14일부터 시작한 전시는 내년 3월 20일까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전 예약제로 운영. 

 

☞ [인터뷰] 어윈 올라프 "작은 바이러스에 전 세계 흔들…인간 자만심 표현하고파"

 

[ 경기신문 = 정경아 수습기자 ]

정경아 수습기자 kyunga101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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