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인류가 공유해온 타협의 기술, ‘최소한의 선의’

2021.12.23 06:00:00 11면

 

◆ 최소한의 선의 / 문유석 지음 / 문학동네 / 256쪽 / 1만5000원

 

‘개인주의자 선언’, ‘미스 함무라비’, ‘악마 판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문유석 작가의 신작이다. 긴 시간 판사로 재직했던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오랜 시간 인류가 발전시켜온 공통의 가치이자 문명 세계의 기둥인 법이 곳곳에서 무너지는 듯한 공포를 느껴 법에 대해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매일 사건사고가 넘쳐나고 유튜브와 SNS에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간의 싸움이 비일비재하다. 각자의 생각과 기준의 다름이 서로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세상이다. 어느새 본문의 내용들은 잊혀지고, 댓글에 비난을 위한 비난만이 남게 된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한 사회의 개인들이 공유해야 할 가치들은 무엇일지 법학적 관점에서 예리하게 짚어보며, 독자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인류가 발전시켜온 공통의 권리선언이자 모두의 약속인 인간 존엄성과 자유, 평등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무색해지는 상황은 아닌지 우려스러운 시대. 급속한 과학기술 발전과 나아질 것 같지 않은 경기 침체로 너나없이 막연한 불안감에 시달리는 시대. 서로에 대한 혐오가 아닌 공존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책은 총 4부로 구성됐는데, 1부 ‘인간은 존엄하긴 한가’에서는 인간 존엄성 개념이 확립된 역사를 살피고 되짚어 보며 인간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우리 사회를 지적한다.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체계화돼 있으며, 특정 부류와 계층이 아닌 ‘모든 인간’의 존엄성임을 전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최소한 이성과 양심에 따른 결정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에 존엄하다는 것이고, 그러한 능력이 있음에도 법을 어긴 사람에게는 벌을 부과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은 보편적 인권의 근거가 된다. (본문 ‘인간은 존엄하긴 한가’에서)

 

2부에서는 개개인의 자유와 이를 침범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힘들이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볼 수 있는 세상이다. 나와는 다른 취향과 모습, 생각이라는 이유가 타인을 비난할 수 있는 정당한 무기일 수는 없다. 작가는 가장 기본이 되는 자유가 무엇일지 질문하며, 인간은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이상 얼마든지 유별나고, 비루하고, 불온할 자유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4부는 공정성, 정의, 평등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존 롤스의 ‘정의론’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언급하며 공정한 경쟁에 대해 논한다. 또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하다는 인식의 오류’를 나타나는 ‘언더도그마’의 개념을 통해 역차별, 약자 혐오 현상에 대한 내용을 풀어낸다.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되, 그 속도가 누군가를 낙오시켜 쓰러지게 만들지 않도록 평등이 제어하는 것. 무조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면 잠시 멈출 줄도 아는 것. 어쩌면 그 망설임의 순간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본문 ‘공정도 공존을 위한 것이다’에서)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뒤, 법이란 사람들이 사이의 넘지 말아야 할 ‘최소한의 선線’인 동시에, 사람들이 서로에게 베풀어야 할 ‘최소한의 선善’이라는 작가의 말을 되새겨 보게 된다.

 

[ 경기신문 = 정경아 수습기자 ]

정경아 수습기자 kyunga1013@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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