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2021.12.27 06:00:00 13면

영화 속의 월드뮤직 5

 

한 곡의 노래가 200명 가까운 사람을 죽게 했다. 1930년대 헝가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충격적이고 불가해한 사건은 소설로 쓰였고 소설은 영화를 탄생시켰다.

 

1988년, 독일 작가 닉 바로코프가 쓴 소설도 1999년 롤프 슈벨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도 노래와 제목이 같다. 글루미 선데이(Gloomy Sunday).

 

도대체 어떤 노래이길래 수많은 이들을 자살로 치닫게 했을까. 모두 나 같은 물음표를 달고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싶다. 영화 내용보다 노래가 궁금했다.

 

영화 전반부는 삼각, 아니 사각 관계의 러브 스토리다.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작은 레스토랑을 무대로 펼쳐지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여자와 그녀를 둘러싼 네 남자의 소리 없는 난투극. 레스토랑 사장 자보, 그곳에서 피아니스트로 고용된 안드라스, 고객 독일인 한스...... 모두 일생을 걸고 일로나를 사랑한다.

 

애인 자보를 두고서도 안드라스와 사랑에 빠진 일로나. 두 남자는 일로나의 ‘질투금지, 싫으면 떠나든가’라는 통첩에 ‘당신을 잃느니 당신의 한 조각이라도 갖겠다’며 기이한 삼각관계를 받아들인다. 거기다 더해 일로나에게 청혼했다 차인 독일인 한스가 나중 나치 점령하 부다페스트의 독일군 대령으로 권력을 업고 나타나면서 치명적인 사각관계가 만들어져 모든 사랑이 절벽을 향해 달려간다.

 

‘글루미 선데이’란 음악은 영화 초반부, 피아니스트 안드라스가 첫눈에 반한 일로나에게 헌정한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예감했는지 장송곡 같으면서 기묘하게 아름다운 이 멜로디는 일로나뿐 아니라 레스토랑 고객을 사로잡고 나중 음반으로 만들어져 세상으로 퍼져나간다. 문제는 이 음악을 들은 이들의 자살행렬.

 

이제 영화를 떠나 실제로 가보자.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실제 글루미 선데이를 작곡한 이는 헝가리 피아니스트 셰레시 레죄(Seress Rezso)로 1933년, ‘세계의 끝’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는데 2년 후인 1935년, 야보르 라슬로(Javor Laszio)가 노랫말을 붙일 때 ‘글루미 선데이’로 바꾼다.

 

영화 속에서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가 구애곡으로 만들었다고 나오는데 실제는 셰레시 레죄가 연인과 헤어진 뒤 만든 곡이다.

 

위험한 노래라고 판단한 헝가리 정부는 금지곡으로 지정한다. ‘자살가의 찬가’라는 별칭을 달고 나라 밖까지 퍼지자 영국도 금지곡으로 묶었고 미국 뉴욕 타임스는 이 희한한 사건을 기사화한다. 잊혀질 듯하던 이 사건은 1968년, 작곡자 셰레시 레죄의 자살로 또 한 번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 노래 하나가 멀쩡한 인간을 극약같이 죽음으로 이끌 수 있는가.

 

죽음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실제 과장되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노래가 만들어진 30년대, 헝가리 국민은 세계대전의 전운과 대공황 속에 지옥을 살고 있었다. 1933년, 부다페스트 시민의 18%가 기아상태에 빠졌고, 실업률은 36%까지 올랐다고 한다. 삶의 벼랑 끝에 매달렸던 이들이 손을 놓기 전 마지막으로 본 꽃이 이 노래 아니었을까.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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