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웅의 하늘의 창(窓)] 다시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주의!

2021.12.27 06:00:00 16면

-칠레 정치의 고통과 그 반전(反轉)

 

 

“신자유주의의 출생지를 신자유주의의 무덤으로 만들겠다. 어찌하여 불평등의 부담을 가난한 사람들만 지게 하는가? 이런 현실을 반드시 끝내겠다.”

 

올해 35세인 젊은 사회주의 정치가 가브리엘 보리치가 칠레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쏟아낸 뜨거운 육성이었다. 칠레 최초의 사회주의 대통령 아옌데 암살 이후 50년 만의 일대 사건이다. 보리치의 당선에 칠레의 청년세대는 열광했고 라틴 아메리카 정치는 새로운 희망을 목격하고 있다. 그건 오래 전 일어났던 비극의 기억이 겹치면서 더더욱 의미심장했기 때문이었다.

 

 

1973년 칠레에서 피노체트가 미국의 지원 아래 군사 쿠데타를 있으킨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었던 키신저는 대통령 닉슨에게 라틴 아메리카에 좌파정권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아옌데 정권 전복이 필요하다며 칠레 군부를 통한 군사 쿠데타 기획을 강력히 주문한다. 칠레의 암흑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선거로 당선된 사회주의자 아옌데는 이 과정에서 살해당했고 미국은 칠레를 파시즘과 결합한 신자유주의의 실험장으로 만든다. 자본주의 시장에 대한 공적 통제를 반대한 하이예크의 제자 밀턴 프리드만이 이끈 이른바 “시카고 학파”의 이론은 이렇게 해서 현실이 된다. 야만의 시작이었다.

 

자본에게는 규제없는 자유를 확대하고 민중들에게는 이러한 자본의 명령에 복종할 의무를 제도화시킨 것이 신자유주의의 정체였다. 자본은 국가권력과 한 몸이 되어 보통 시민들의 자기보호 장치를 해체시켜버리고 말았다. 자본에게 규제는 민중들에게는 보호막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에 대한 공적 통제가 사라진 결과는 자본의 전면적 지배에 대한 저항을 용납하지 않는 무서운 폭력과 함께, 빈부의 격차를 확대 재생산하는 불평등의 심화였다. 이 과정을 겪으면서 칠레 국민들은 특권 동맹세력이 주도한 착취상태에 놓이고 권리는 끊임없이 박탈당했다. 미국의 독점 대자본 그리고 이들과 하나가 된 칠레의 부자들을 위한 정치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질식시켰다.

 

부자들의 부담은 최소화되었으며 이들의 이윤은 극대화되고 그에 반해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은 더욱 깊어져갔다. 이를 해결해보려는 민중의 정치참여는 철저하게 억압되면서 국가폭력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이들을 진압하는 대자본의 무기로 작동했다.

 

본질적으로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진 폭력이었던 것이다. 피노체트 이후에도 그 유산은 칠레 정치에 지우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고 민주주의란 독점 대자본의 압도적 지배를 정치적으로 해체시키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일깨움을 만들어냈다. 칠레 사회주의 운동은 바로 이 사상적 각성과 정치적 실천을 위한 기본경로가 되었고 거대한 독점 대자본과 동맹을 이룬 특권세력과 대결을 벌이는 최전선이었다.

 

보리치는 바로 그 최전선에서 지난 반세기에 걸쳐 축적된 시민적 위력이 되었다. 그건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한 사회질서를 지향하는 “시민지배의 정치”이다. 이는 대자본이 구성하는 특권적 계급질서를 타파하고 가난하고 멸시당하는 이들이 아예 생겨나지 않는 대전환의 기획을 축으로 펼쳐나가는 변혁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이렇게 달성되어가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고전적 형태를 기원으로 만들어낸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정치는 애초부터 그렇게 합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참여주체에 제한이 있긴 했으나 보통의 노동하는 시민들이 정치의 주체로 세워지게 한 민주주의의 발생은 귀족과 부자들이 독점한 정치에 중대한 균열을 내는 치열한 투쟁의 산물이었다.

 

-고대 그리스의 계급투쟁과 민주주의

 

 

고대 그리스의 계급정치와 그 투쟁의 역사를 분석한 크르와(G.E.M. de Ste. Croix)의 역작 『고대 그리스 세계의 계급투쟁(The Class Struggle in the Ancient Greek World)』은 기원전 6세기 후반 솔론의 개혁에 이어 5세기에 들어서는 초입에 클라이스테네스의 시민혁명적 민주체제의 수립을 주목한다. 단지 뛰어난 어떤 특정 지도자의 선택과 결단만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를 지탱하고 밀고 나가는 시민혁명의 대중적 운동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기원전 8세기 이후 지중해 무역권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게 된 그리스에는 부를 독점하는 계급이 형성되고 이들에게 채무가 생겨난 농민의 대대적인 노예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어간다. 그리스의 군사력은 농민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이 빚에 짓눌려 시민적 자유를 잃고 노예로 전락해가는 숫자가 늘면서 무장한 농민반란이 발생하게 된다. 이들이 바로 민중, 또는 인민 내지 시민 등으로 불리는 “데모스(demos)” 계급이었다.

 

솔론의 개혁정치는 이들 데모스의 혁명적 저항과 요구에 대한 정치적 대응이었다. 그는 매우 담대한 채무탕감정책을 관철시켰고 빚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을 금지했으며 자기 몸을 담보로 하는 제도를 철폐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대 혁명적 조처였고, 이를 기반으로 귀족이 아닌 아테네 구성원들에게도 정치참여의 길을 열어나갔다.

 

 

솔론이 만든 '4백인 회의'는 정치권력에 참여할 수 있는 주체의 확대를 의미했다. 시민지배체제의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민주주의’라고 번역되는 영어 ‘데모크라시(Democracy)’의 어원인 “데모스크라티아(Demoskratia)”는 시민들에게 권력이 주어지는 체제를 의미한다. 솔론의 정치개혁 이후 농민들이 주축을 이루는 아테네 시민들은 이제 더 이상 기존 권력질서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존재라기 보다 정치적 결정권을 가진 주체로 스스로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개혁정치의 기반 위에서 클라이스테네스는 아테네 촌락의 자치공동체를 수립하고 이것이 민주정치의 참여 주체가 되는 조처를 취했다. 특히 그는 공직의 의무를 추첨을 통한 순환제로 시민들에게 부과하면서 그에 따른 재정적 보상까지 마련함으로써 가난한 시민들도 경제적 곤경 때문에 공직에 참여하는 길이 봉쇄되는 상황을 해결했다. 이와 함께 기존의 법정을 견제하고 검증하는 시민법정까지 세워 특권적 지배질서의 배타적 구도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

 

명실상부한 “데모스크라티아”를 실현하는 클라이스테네스의 개혁정치는 기원전 508년 경에 일어난 시민혁명적 봉기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귀족이나 부자에게만 독점되었던 권력을 시민들에게도 평등하게 분배하지 않으면 더는 기존질서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실로 치열한 계급투쟁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국가의 권력은 일반시민들에게도 분배됨으로써 이들의 권리가 침해되거나 노동력이 착취되는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체제가 만들어져가게 되었던 것이다.

 

니코스 플란차스가 말했던 대로 국가는 지배계급의 고정된 운영위원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현장이고 그 투쟁의 정도에 따라 국가권력의 변화가 가능해지는 것을 고전적 그리스 민주주의 정치는 입증해주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하게 주목해야 할 바는 소수의 지배로 귀착되기 쉬운 현실정치의 과두제화는 부단한 투쟁을 통해서만 막아낼 수 있다는 점이며 이것이 시민지배의 주체적 기반을 창출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이다.

 

-대의제의 과두적 한계를 넘어

 

이렇게 보자면 왕권체제에 대항하면서 발생하고 성장한 “대의제 민주주의”는 왕정이 소멸했거나 약화된 조건에서는 그 자체가 과두적 기득권 질서가 되기 쉽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직접민주주의가 작동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대의제의 불가피성이 있다고 해도 대의제로만 민주주의 체제가 굳어질 경우,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의제는 대자본의 요구를 관철하는 과두정치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여기서 직접 민주주의의 기반을 확대하고 이것이 본질로 귀착되는 민주주의 투쟁이 절실해지게 된다. 그렇지 못하면 대의제는 금권정치의 서식처가 되고 시민지배의 영역은 축소되어가기 마련이다. 포장은 데모스크라티아지만 사실적 지배의 주체는 이들 데모스와는 지위나 계급에서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는 특정소수의 권력자들일 뿐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도 의회는 과두지배로 작동하고 있으며 대통령과 같은 최고권력자는 시민과의 일상적 소통을 기대하기 어려운 자리에 있고 시민들은 단지 선거시기에만 표와 지지세력으로 도구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은 대답도 잘 받지 못하는 민원, 또는 청원과 같은 문제제기 수준의 주체이거나 기성 정치에 반발하고 저항하는 정도이지 그 자체로 권력을 가지고 결정권을 발동시키는 데모스크라티아의 주체가 아니다.

 

그래서 정치는 날로 시민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그 결과 시민들은 자신들을 대리할 권력을 선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들을 지배하는 권력자를 선출이라는 과정을 통해 선택하는 권리와 자유만 주어지게 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작의 지배자가 스스로 피지배자로 전락하는 모순이 발생하고 데모스크라티아가 본질적으로 파손되는 것이다.

 

-다시 사회주의를 주창하며

 

 

1884년 갑신정변을 주도한 세력이 밝힌 시정 개혁 두 번째 사항은 “문벌을 폐지하고 인민평등권을 제정”하는 작업이었다. 이는 동학 농민 전쟁을 비롯, 당대 민중들의 혁명적 변혁요구에 대한 개화파 혁명세력의 응답이었다. 이는 데모스크라티아의 수준까지 상정한 것은 아니었다 할지라도 인민평등권의 정치철학을 선언했다는 점에서 긍국적으로는 민중권력 또는 인민권력 내지 시민권력의 창출이 가능하게 되는 초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용어를 선택하든지 간에 “시민지배(demoskratia)”로 가는 길은 문벌폐지에 상응하는 계급철폐와 직결된다. 불평등한 사회경제적 구조를 통해 유지되는 계급이 존재하는 한 시민지배는 왜곡되기 마련이며 그에 따라 시민들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체제는 창출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자로 잰 듯 빈틈없는 평등의 추구는 불가능하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부자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가 정당화되고 그에 따른 불평등은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문제일 뿐이라는 식의 접근은 권리의 차등분배를 유지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따라서 이를 기반으로 하는 대의제의 과두적 지배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이미 기본적인 한계에 봉착했다는 인식이 요구된다. 대의제는 특권제도가 되어버렸고 시민들의 지배는 파고 들 틈이 없게 되었다. 이런 구조에서 정치에 대한 자본의 지배는 확보된다.

 

엘렌 마이크신즈 우드가 그의 책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적대관계 (Democracy Against Capitalism)』에서 일찍 간파한 것처럼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적대적이다. 민주주의는 시민권력의 확대를 지향하는 반면, 자본주의는 그것을 제약하고 통제하는 가운데 대자본의 자유를 지켜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자본의 자유란 무엇인가? 지불하지않는 노동력을 착쥐하는 권력을 누리는 것이고 과도한 이윤을 보장받는 정치를 관철시키는 것이며 시민적 권리의 공적 확대를 반대하면서 자신들의 권력을 일상의 지배구조로 만드는 것이다. 보통의 시민들이 개별적으로 이들의 권력과 맞서서 자신을 지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시민지배의 권력이 확대되어 차별과 차등이 아니라 평등하고 공적인 권리가 보장되는 체제의 구성이다. 그걸 “민주적 참여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실패한 사회주의 정치만 사회주의가 아니다. 자본의 독점적 지배를 반대하고 시민권력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를 기획하며 생태계를 보호하고 인간과 자연의 협력적 존재양식을 발명해나가는 일은 미래정치의 핵심이다. 이것은 특히 오늘날의 청년세대가 누려야 할 권리를 만들어가는 정치의 기본이다.

 

가브리엘 보리치가 어디 칠레에만 있겠는가? 과두제의 진실을 숨기고 있는 대의제의 허상을 더는 신뢰하지 않고 자본주의 정치의 배타성과 독점적 지배, 그리고 이에 따른 시민권력의 축소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의 완성인 사회주의를 꿈꾸고 담대하게 기획하며 일대 돌풍을 일으킬 청년들은 없는가?

 

갑신정변도 당대의 청년 지사들이 일으킨 혁명이다. 비록 실패했다고 해도 그런 기세와 의지는 언제든 소중하다. 가난한 시민들도 정치의 주체가 되는 세상을 향한 계급투쟁의 정치, 이는 과격하거나 시대착오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선의 가치로 여기면 계급차별의 지배구조는 결코 타당하지 않다는 인식에서 출발하는 경로다.

 

그렇게 될 때 시민들은 누구나 자신을 정당하게 지킬 수 있는 체제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파시즘의 위협을 이겨낼 사회주의로 완성되는 데모스크라티아는 그런 정치적 의지의 열매다.

 

 

김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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