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지붕 위의 바이올린 (선라이즈 선셋)

2022.01.10 06:00:00 13면

영화 속의 월드뮤직 6

 

‘한 순간, 생의 모든 것이 지나가는 눈빛’이란 말을 이해한 것은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감독: 노먼 주이슨)’에서 신부 아버지로 분한 차임 토폴을 통해서다.

 

신기하고 존귀한 선물이면서 애간장을 끓게 하는 십자가, 자식이란 존재를 통해 겪은 희노애락애오욕의 길고 긴 세월을 단 몇 초로 표현해냈다. 명배우의 눈빛만이었을까. 그 눈빛을 더 빛나게 했던 것은 결혼식 장면 내내 흐르던 노래였다.

 

선라이즈 선셋(Sunrise Sunset), 그 노래는 사춘기 때 라디오 심야방송을 통해 처음 들었고 자주 들었다. 카카오 함량 높은 초콜릿처럼 달콤하기보다 쓰고 음울했던 멜로디에 콧날 시큰했던 기억도 나는데 사춘기의 감상만은 아니었다. 작사가 셀든 하닉은 처음 노랫말을 쓴 후 작곡가 제리 복의 부인에게 보여주었는데 부인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작사가의 누이 역시 노랫말을 보고 울었다.

 

이 소녀가 내가 키운 그 아이인가/ 이 소년이 놀고 있던 그 아이인가/이 아이들이 커가는 걸 기억 못하겠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언제 그 소녀가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 되었나/ 언제 그 소년이 저렇게 키가 컸나 /저 애들이 작았던 때가 어제가 아니었나 / 해가 뜨고 해가 지고 해가 뜨고 해가 지고 / 쏜살같이 흘러가는 나날들 / 어린싹들이 밤새 해바라기로 변하고/ 우리가 바라보는 중에도 꽃을 피우네

 

‘선라이즈 선셋’의 히트로 주가를 더 올린 영화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시작은 뮤지컬이었다. 숄렘 알레이헴(Cholem Aleikhem)의 소설 ‘테비에의 딸들’을 원작으로 한 이 뮤지컬은 1964년 초연, 8년에 걸쳐 3242회 공연했을 정도로 대중의 폭발적 사랑을 받았고 토니 어워즈 최우수상을 포함, 총 9개상을 받아냈다. 영화 역시 72년 아카데미 어워즈에서 3개 부문, 골든 글로브 어워즈에서 2개 부문을 수상했다.

 

뮤지컬에서 아버지 테비에로 나온 이스라엘 배우 차임 토폴(Chaim Topol, 1935년생)은 영화에서도 같은 역으로 나온다. ( 결혼식 장면의 ‘늙은 아버지 눈빛’으로 나를 흔든!)

 

테비에의 눈빛이 더 가슴 저린 것은 러시아에서 탄압받던 유대인 가장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1900년대 초기의 우크라이나. 홀로코스트 이전, 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러시아의 참혹한 유대인 박해 시기다. ‘선라이즈 선셋’이 흘렀던 장녀의 결혼식 마지막은 러시아 정부군의 난행으로 아수라장이 된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전통 유대방식에 반한 세 딸들의 결혼을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테비에 가족의 이야기다. 세 딸을 모두 출가시키고 가슴도 집도 텅 빈 것 같은 아비 테비에 앞에 러시아 맹추위 속에 떨어진 유대인 추방령.

 

눈 내리는 진창길을 달구지 끌고 떠나는 테비에의 모습은 때마침 지는 석양으로 슬픔이 더해지는데 영화 포스터에 나온 바이올린 주자가 지붕에서 내려와 그의 뒤를 따르며 위무하듯 연주한다. 그게 마지막 장면이다. ‘지붕 위의 바이올린’의 이미지는 화가 샤갈의 그림들에서 따왔다. 그의 그림에서 바이올린이 많이 나오는 이유를 아는가. 바이올린은 디아스포라의 삶을 산 유대인이 즐겼던 악기다. 2000년 유랑한 유대인이 피아노나 하프를 들고 다닐 수는 없지 않았겠는가. 샤갈도 유대인이었다. 그러고보니 영화 속 바이올린을 직접 연주한 아이작 스턴, 감독 노먼 주이슨, 주인공 차임 토플도 유대인이다. 원작자 숄렘 알레이헴도!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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