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행 칼럼] 소시오패스 사회

2022.01.20 06:00:00 13면

 

택배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 이즈음 동네 식당에서 밥 먹다 중년 남성 몇이서 욕하는 것을 들었다. 그중 한 사람이 택배 노동자들의 고된 노동을 동정하자 어떤 이가 "누가 그 일을 시켰어?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이니 죽든 살든 해내야지!" 하고 쏘아붙였다. 그 말에 나머지 사람들은 토를 달지 않았다.

 

얼마 전에는 동네 버스 정거장에서 희한한 장면을 목격했다. 젊은 친구 A는 동년배로 보이는 B의 짐을 들어 버스에 올려주었는데 배려받은 그가 나머지 짐마저 들어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은 A는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머지 짐 하나를 들고 버스에 올라탄 B는 A에게 도와줄 바에는 끝까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나무랐다. 급기야 A가 모르는 사람에게 선의를 베푼 제가 잘못입니다, 하고 사과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이런 반사회적 인격 장애 사례는 과연 일반화할 수 없는 특별한 것일까? 그럴 것이다. 하지만 포털 뉴스에 달린 댓글을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지금 당장 방역 당국의 소상공인 영업 제한에 관한 뉴스에 어떤 댓글이 주를 이루는지 들여다보자.

 

"자영업자들에게 왜 돈을 주냐? 세금이 아깝다.", "이 기회에 저것들 망해야 한다. 자영업자들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모두 힘든데 저것들만 돈 주는 건 공정에 위배된다. 왜 나는 돈 안주냐?" "저것들 돈 많이 벌어놨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영업 제한은 불가피하나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크니 정부는 합당한 손실 보상을 해야 한다, 다만 거기에 속하지 않는 피해자들도 있으니 보다 세심한 보상 기준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등과 같은 댓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자신들과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을뿐더러 공존해야 할 피해자들을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리고 말겠다는 집단 댓글을 보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이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 소시오패스가 아주 가까운 곳에, 일상 속 우리 주변에 많다는 증거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와 『그저 양심이 없을 뿐입니다』 등 두 권의 상담 임상 사례 책을 통해 소시오패스의 심각성을 알린 미국 하버드대 의대 정신과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마사 스타우트에 따르면 소시오패스는 인구 25명 당 1명 꼴이다. 소시오패스가 범죄자로 노출되는 경우도 20% 정도여서 밖으로 드러나는 예도 드물다. 일터나 가정 등 삶의 현장에서 멀쩡한 얼굴로 선량한 사람들의 삶을 일상적으로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함께 일하지 않으면 삶 자체가 영위되지 않았던 농촌 공동체 사회가 붕괴되고 무한 경쟁 시대인 현대 사회로 이행하면서 소시오패스가 더욱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게다가 대면이 금지된 코로나 환경은 필연적으로 개인이 고립돼 소시오패스 사회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심리 영화 '나를 찾아줘'에서 보여주고 있다시피 소시오패스는 양심이 전혀 없는 인간이다. 양심을 인간관계에서 형성되는 감정적 의무감이라고 할 때 필수 요소는 타자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타자를 대할 수 없는 불우한 시대에 놓여있다.

 

불행한 시기는 언제나 역설적으로 인간의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양심과 연민의 정과 연대. 소시오패스 사회라는 어둠 속에서 이 가치는 과연 얼마나 반짝이고 있을까?

이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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