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 기행]  라비앙 로즈 ‘La Vie en Rose’

2022.03.29 06:00:00 13면

영화 속의 월드뮤직 13

 

어리고 예쁘고 춤 잘 추는 걸그룹에 점령된 지 오래인 방송에 노인의 노래가 장안의 화제다. 시니어들이 노래로 인생을 들려준다는 취지의 방송인데 (JTBC ’뜨거운 싱어즈’) 유독 85세 배우 김영옥 씨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와 82세 배우 나문희 씨의 ‘나의 옛날이야기’가 심장을 두드린다. 나이 든 목소리는 불안했고 발음, 음정이 엇나가기도 했다. 그런데도 집중하게 하고 콧날을 건드리더니 종내 눈물을 떨구게 한다. 라디오 프로그램이라도 그랬을까. 노년의 배우는 마이크 쥔 주름진 손으로, 뜨거운 것이 빠져나간 눈빛으로, 굽은 등으로...... 노래가 아닌, 80년 인생을 전했다. 그게 심금을 울렸다.

 

월드뮤직 가운데 가수의 삶을 알고 나서 좋아지는 노래들이 있다.

 

에디트 피아프(1915-1963)의 라비앙 로즈(La Vie en Rose)는 대단한 월드뮤직 명곡이지만 목소리가 내 취향이 아니고 노래, 음률, 가사도 마음에 와닿지 않아 즐겨 듣지 않았다.

 

에디트 피아프의 실제 삶을 담은 2008년 개봉영화(올리비에 다한 감독) ‘라비앙 로즈(장밋빛 인생)’를 보기 전까지는. 에디트 피아프의 삶은 장밋빛이 아니었다.

 

1차 대전 중, 프랑스 변두리 지역 베르빌에서, 서커스단 곡예사와 장터 가수의 하룻밤 사랑으로 태어난 피아프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분유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가난은 열 살 키에서 성장을 멈추게 했고 엄마처럼 어린 나이에 장터 가수로 살게 만들었고 열다섯 나이의 미혼모가 되게 했다. 그렇게 태어난 피아프 인생 유일한 자식은 뇌수막염으로 두 해를 못 넘기고 죽고 만다. 그 삶에서 만들어진 목소리가, 노래가 어떠했겠는가.

 

‘한 세상 다 돌고 온 듯한’ 장터 소녀의 목소리를 우연히 듣게 된 여행자 루이 레플리는 파리 레스토랑 무대가수로 데뷔시킨다. 거짓말 같은 행운은 계속 이어져 그녀의 목소리에 반한 음악가 레몽 아소, 시인이며 극작가인 장 콕토 등의 도움으로 피아프는 물랭루즈 무대의 스타가 된다. 사랑도 얻는다. 노래를 가르쳐달라고 찾아온 수려한 이탈리아 청년이었다. 피아프는 애인을 영화계에 데뷔시켜주었고 무명의 청년은 인기를 얻는다. 그가 바로 샹송 ‘고엽(Les Feuilles Mortes)’을 부른 배우이자 가수 이브 몽탕. 그러나 대스타가 된 이브 몽탕은 변심한다. ‘라비앙 로즈’는 이브 몽탕에게 버려진 피아프가 실연의 고통 속에서 직접 노랫말을 지어 나온 노래다.

 

‘내 시선을 내려놓는 눈동자/ 입술에 머물다 사라지는 미소/이게 바로 내 사랑의 초상화/ 그가 나를 품에 안고 속삭일 때면/인생은 온통 장밋빛/그가 내게 사랑의 말을 할 때/ 늘 하는 가벼운 말이라도 나를 행복하게 하네......’

 

실연의 치유책은 새로운 사랑이었다. 미국 카네기홀 공연 시기 만난 복싱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과 또 불같은 사랑에 빠졌으나 이번엔 비행기 사고가 사랑을 추락시킨다. 그 충격으로 실어증까지 걸린 피아프, 그 고통은 또 새로운 노래를 만들어낸다.

 

‘사랑의 찬가’ 사랑의 찬가의 노랫말도 장밋빛 눈부시고 장미향 가득하다. 마르셀 세르당 이후 찾아온 사랑, 두 차례의 결혼 모두 비극으로 막 내리는데 이후 술과 담배에 절어 살던 피아프는 48세 이른 나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부모도 첫사랑도 첫아이도..... 생애 모든 사랑이 그녀를 버렸으나 죽는 날까지 장밋빛 사랑을 꿈꾸었던 피아프의 노래는 참으로 애달픈 인생 찬가다. 삶과 사랑의 벼랑 끝에 서본 적 있는 자, 어찌 그녀의 노래를 외면할 수 있으리.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기사 속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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