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행 칼럼] 철가방 청년의 반란

2022.05.05 06:00:00 13면


 

 

"대학 본관 앞 / 부아앙 좌회전하던 철가방이 /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 저런 오토바이가 넘어질 뻔했다. / 청년은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 막 벙글기 시작한 목련꽂을 찍는다. // 아예 오토바이에서 내린다. / 아래에서 찰칵 옆에서 찰칵 /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 찰칵찰칵 / 백목련 사진을 급히 배달할 데가 있을 것이다. / 부아앙 철가방이 정문 쪽으로 튀어나간다. // 계란탕처럼 순한 / 봄날 이른 저녁이다."

 

이문재 시인의 '봄날'이라는 시인데 봄날처럼 상큼하기 이를 데 없다. '철가방 청년'이 자장면이나 짬뽕 등을 대학에 배달하고 돌아가면서 활짝 핀 목련꽃을 지나칠 수 없었는가 보다. 오토바이에서 내려 휴대전화로 찍는다. 그중 몇 장을 누군가에게 전송했을 것이다.

 

이 시는 간결하지만 결코 간결하지 않다. 생각할 여지를 많이 주기 때문이다. 사진이라는 매체와 인터넷이라는 관계망을 통한 철가방 청년의 미적 열정이 발산하는 것도 중요한 감상 지점이 아닌가 한다. 청년은 자신이 더 이상 예술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라고 당당하게 선언이라도 하는 듯하다.

 

발터 벤야민의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따르면 사진 예술은 영화와 함께 유일무이한 진본이라는 아우라를 붕괴시킨 장본인이다. 종교의식의 수단이었던 예술은 아우라 그 자체이면서 소수의 향유물이었다. 그런데 문명의 산물인 사진 예술 등이 예술의 독점적 지위에 균열을 낸 것이다. 대중이 예술의 주체로 서게 된 기념비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철가방 청년은 전송이라는 방식을 통해 전시문제까지 해결한다. 지인 몇 명에게 보냈을 수도 있고, 수천 명이 있는 커뮤니티에 업로드 했을 수도 있다. 인터넷 시민들은 청년의 작품을 감상하며 다양한 평을 쏟아냈을 것이고 이를 통해 청년은 자신의 취미 판단을 되돌아보았을 것이다. 벤야민이 오프라인 전시 공간 없이도 전시를 해결하는 현재 모습을 보았다면 자신의 아우라 예술론을 더욱 심화시키지 않았을까?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건 벤야민의 예술론이 아니다. 철가방 청년의 취미 판단도 아니다. 대중들이 피동이나 객체가 아니라 능동과 주체로 살아가고 있느냐의 여부다. 이문재 시인의 봄날은 능동과 주체에 방점을 찍는다. 중국집 배달 일을 하며 살아가는 청년이 자기 삶의 주인이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미적 주체가 됨으로써 자유를 얻은 청년은 진정한 자유를 위해 필연적으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을까? 시는 이 부분은 제시하지 않는다.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독자의 참여를 무한 보장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아우라를 해체시켰다. 그 결과물은 사진예술과 같은 대중의 획득이다. 자기 안으로만 파고드는 시에게 엄청난 영감을 줄 것이다.

 

철가방 청년의 목련꽃 사진 찍기와 전송은 단순한 행위이지만 결코 단순한 것이 아니다. 개인이 주체로 살아가면서 동시에 타자와 공존하려는 꿈틀거림이기 때문이다. 이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게 인간 세상에 과연 있을까?

 

 

이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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