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범의 미디어 비평] 인권, 언론이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 

2022.05.11 06:00:00 13면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가 활동하던 2013년 1월21일(월).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북 탈출 주민 서울정착 지원업무 탈북 공무원 간첩혐의 구속’이라고 보도했다. 다음날도 1면 머리기사로 ‘간첩 정체는 탈북자 행세한 화교였다’고 대서특필했다. 사설과 기획기사까지 이어졌다. 


당시 이 사건을 동아일보에 이어 기사화한 신문은 조선일보가 유일했다. 22일자 사회면에 공안당국 발표를 인용, 간략하게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간첩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탈북자라고 했다. 두 신문을 빼고는 어떤 신문도 이 사건을 보도하지 않았다. 


간첩 누명을 뒤집어 썼던 유우성씨는 2년 9개월만에 대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강압에 의한 허위자백 때문이었다. 2018년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진상위원회 재조사 후,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지난 5일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비서관 19명을 1차로 인선 했다. 국무총리나 장관 지명자들의 인사청문절차가 진행되는 마당이라 언론의 관심을 크게 받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간첩 조작사건의 담당 검사였던 이시원 변호사가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되자 언론들은 장관급 이상의 뉴스가치를 부여했다. 아울러 9년전 간첩 조작 사건까지 불러냈다. 많은 국민들은 귀와 눈을 의심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사건이 맞냐라고.


지난 9년간 간첩 조작사건 기사를 점검하는 과정에서, 유우성씨 여동생의 겁에 질려 흐느끼는 전화 목소리를 들을 땐 전율이 감돈다. 국정원 수사관과 검사에겐 인권이란 단어는 없었다. 출세를 위한 실적 쌓기 밖에 없었다.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의 임명 보도는 언론마다 조금씩 달랐다. 동아일보는 비판적이었다. 보수신문으로서 이례적이었다. 이 신문은 사설에서 윤 대통령과 대구고검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내정자와도 같은 부서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고 언급했다. 검찰 내부에서 ‘윤-한 인맥’이 발탁배경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고 언급했다. 9년전인 2013년의 한 탈북 서울시 공무원과 가족을 파탄으로 이끈 보도와 대조를 이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임명 사실을 스트레이트 기사로만 보도했다. 조선은 ‘신설 정책조정기획관에 장성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이시원 비서관을 포함시켜 보도했다. 기사내용에 2014년 간첩 조작 사건에 연루돼 징계를 받고 대구고검으로 좌천된 전력이 있고, 그때 윤 대통령은 국정원 댓글 사건 파동으로 대구고검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했다. 대통령과의 친분이 대구고검 시절이었음을 암시했다. 중앙일보는 소제목에 검사출신 이시원이 간첩 조작으로 논란이 있다고만 보도했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스트레이트 기사와 사설까지,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간첩조작사건 맥락을 짚어주는 기사는 뉴스타파 최승호 기자와 MBC 장인수 기자의 과거 추적 보도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시원 비서관의 언론검증은 도덕성의 문제를 넘어 인권의 문제다. 인권 없는 민주주의는 ‘검은 백조’다. 

최광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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