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쇼통(Show通)’의 덫

2022.05.18 06:00:00 13면

 

 

조선시대 실용주의 사상인 ‘실학(實學)’을 논하자면 그 중심에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지은 다산 정약용 선생을 먼저 세울 수밖에 없지요. 과연 “민생의 의사가 국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한 그의 주장은 절대왕정 국가에서 대단한 용기로 평가받을 만해요. 그런데 다산 선생의 국가 개혁 욕망을 자극했다는 반계(磻溪) 유형원 선생의 책을 읽다가 가슴이 뛴 적이 있답니다.

 

다산보다 무려 140년을 앞서 태어난 반계가 남긴 반계수록(磻溪隨錄)에서 놀랍게도 ‘노비제도의 폐지’ 주장을 보았던 거예요. 조선 망국의 원흉이 국가 생존력을 떨어뜨린 신분제도라는 사실을 깨달을 즈음이었지요. 물론 오늘날처럼 ‘만민 평등’을 주창한 건 아니에요. 반계 선생은 중국의 예를 따라 ‘한 집에 기거하면서 노동을 제공하여 그 대가로 의식과 품삯을 받도록 하는’ 고공제도(雇工制度), 그러니까 일종의 ‘고용노동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했더군요.

 

반계를 읽자니 일찍이 조선 왕들이 유형원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실용주의(Pragmatism)를 진화시켰더라면 역사가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이 새록새록 들더라고요. 새 정부가 출현할 적마다 한번은 등장하곤 하는 ‘실용주의’라는 용어가 윤석열 정부에서도 튀어나오네요. 오직 능력만을 위주로 인재를 발탁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선언에 은근히 기대했지만, 막상 인선 결과를 보니 별반 감동을 주지는 못하고 있군요.

 

정치경력이 쌓일수록, 선수(選數)가 높아질수록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습성이 정치인들의 몸에 깊게 배는 우리의 못된 정치풍토가 떠오르네요. 유권자들을 대략 쉽게 생각하고 업신여기는 정치인들의 기질은 심각한 고질병인 듯해요. 실제는 엉망진창인데도 인기발언을 앞세워 연기만 적당히 잘하면 유권자들이 찍어주고 또 찍어주리라는 그릇된 믿음을 지닌 정치꾼들이 우글거리는 게 우리 정치권 정글의 현실이잖아요.

 

많은 이들이 정치무대를 오직 입신양명(立身揚名)의 사다리로 삼아 특권을 악용해 명예와 부를 함께 훔치는 천박한 사업장쯤으로 써먹는 게 사실이죠. 가슴으로 감동을 확산시키는 정치가 아니라, 오직 잔머리로 사익만을 탐하는 저질정치가 판을 쳐온 세월이 너무나 길어요. 하라는 소통(疏通)은 안 하고, 주야장천 쇼통(Show通) 놀음에만 몰두하는 못된 정치꾼을 고수(高手)로 여기는 어리석음이 참으로 깊네요.

 

이번 지방선거에서부터 민심 한복판에서 진정한 국리민복을 일궈낼 참다운 실용주의, 올곧은 실학사상으로 무장한 일꾼들을 많이 찾아내야 해요. 온갖 벼랑끝전술로 죽기살기식 육박전만 모색하는 중앙정치의 쇼통 장난질에 무한정 놀아나서는 안 돼요. 대통령선거가 끝나고도 도무지 모함질에서 좀처럼 놓여나지 못하는 구제 불능 정치권이 참말로 딱합니다. 물갈이 한번 시원하게 했으면 좋겠다는 충동이 불끈불끈 일곤 하는데, 저만 그런 건가요?

안휘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