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공정과 정의보다는 정직한 섹스를!

2022.06.09 11:00:00 10면

70. 파리, 13구 - 자크 오디아르

 

극장가에서 조용히 종영을 준비 중인 프랑스 영화 ‘파리, 13구’는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하나는 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감독 자크 오디아르의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뜻밖에도, 꽤나 야한 영화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된 모티프는 섹스이다. 영화 속 섹스가 이유가 없으면 그건 외설이자 포르노이다. 이 영화에서의 섹스는, 잘 들여다보면, 다들 이유가 있다. 섹스는 사람들 사이에 있어 존재의 증명이자 관계의 증명이다.

 

영화 속 주인공 중 한 명인 중국계 여성 에밀리(루시 장)에게 있어 섹스는 사랑의 강렬한 도구이다. 룸메이트인 흑인 남성 카미유(마키타 삼바)는 에밀리를 처음엔 그저 섹스 파트너로 생각한다. 그건 에밀리가 원한 것이기도 했다. 에밀리는 카미유를 사랑하기 때문인지, 섹스의 표현에 있어서 거침이 없다. “네 거를 빨고 싶어”, “뒤에서 박아줘” 등등의 표현을 서슴지 않는다. 에밀리는 보통 때도 옷을 잘 입고 있지 않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도 에밀리는 옷을 홀딱 벗은 채 소파 위에 앉아 노래방 마이크로 노래를 흥얼거린다.

 

 

반면에 카미유는 비교적 점잔을 떠는 편이다. 그는 임시교사로 일하고 있으며 그래서 밤과 낮이 좀 다르다. 카미유는 에밀리의 거침없는 성적 요구, 그런 표현들을 부담스러워한다. 그래서 단박에 판가름이 난다. 에밀리는 솔직하고, 카미유는 다소 위선적이다. 둘의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파리는 서울과 달리 20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서울은 25개 구이다. 파리 13구라고 하면 이민자들이 많이 살되, 중산층과 중하층이 뒤섞여 살고 있는 곳이다. 중국계이면서도 이민 1세인 할머니가 살던 집인 덕에(할머니는 여느 아시아인처럼 악착같이 벌어 부동산에 돈을 묻었다) 룸메이트를 둘 만큼 넓은 집에 사는 에밀리가 나오는 것, 고등교육을 받은 아프리카 흑인계 카미유가 같이 어울릴 수 있는 것, 그런데 그게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13구라고 하는 공간이 주는 특성 때문이다.

 

공간은 의식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계급을 지배한다. 파리 13구는 우리로 보면 이태원이고, 좀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해방촌 같은 곳이다. 카페도 많고 다닥다닥 붙어사는 편이지만 그리 궁색해 보이지 않는다. 문화가 꽤 다양하고 심도가 있어 보이는 것도 비슷한 느낌이다.

 

파리 13구는 어쩌면 프랑스 사회가 매우 하이브리드(hybrid)해졌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공간일 수 있다. 오랜 기간 아프리카와 인도차이나를 침략하며 제국주의적 면모의 역사를 지녀 왔던 프랑스에서, 과거 식민지 사람들과 그 후손들이 이제는 오히려 많은 부분에서 주류화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역(逆) 혼혈 사회이자 이종(異種) 사회가 된 셈이다. 그렇게 된 데에는 이민자들의 값싼 노동력이 유럽의 중심이라는 프랑스 사회를 지켜 온 덕이 클 것이다.

 

 

어쨌든 그런 등등의 모습들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매우 내추럴하다. 부끄럽게도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촌스러운 편견 가운데 하나는 검은 몸과 하얀 몸이 뒤섞이는 것을 낯설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흑인 남자와 백인 프랑스 여자의 섹스는 일반화됐다. 영화 ‘파리, 13구’는 프랑스 사회의 그런 속살을 보여주고 있는 얘기이기도 하다.

 

카미유는 에밀리와 헤어졌지만 임시교사 일도 오래 하지 못한다. 다 돈 때문이다. 그 와중에 그는 친구의 일을 떠안게 되는데, 부동산 소개 사무실을 대신 맡게 된 것이다. 카미유는 부동산 사업 전문가가 아니다. 당연히 파트너가 필요했고 이때 등장하는 것이 노라(노에미 멜랑)이다.

 

근데 이 여자, 여러 가지 사연이 많다. 서른을 훌쩍 넘긴 노라는 파리 1대학에 진학한다. 그녀는 파리 근교에서 삼촌을 도와 부동산 소개업을 했었다. 삼촌과는 10년 넘게 근친 관계를 맺어 왔고 그녀가 오랜 준비 끝에 대학에 온 것은 삼촌과의 관계를 청산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섹스는 여전히 일종의 족쇄와 같다. 노라는 대학 파티에 짧은 치마와 금발 가발을 쓰고 갔다가 온라인 섹스 채팅의 스타인 엠버 스위트(제니 베스)로 오인받는다. 교내 SNS에 ‘노라=포르노 배우’라는 가짜 뉴스가 삽시간에 퍼지고 그녀는 그렇게 속절없이 학교라는, 이기적이고 철없는 젊은이들의 커뮤니티에서 밀려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곧 부동산 소개소에 취업을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카미유를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노라의 섹스 라이프는 에밀리처럼 당당하거나 공격적이지 못하다. 노라는 카미유와의 정사가 그다지 즐거워 보이지 않는다. 카미유가 사정(射精)을 하고 일을 끝내면 후다닥 일어나 옷을 입고 자신의 공간으로 돌아가는 식이다. 카미유는 노라가 지닌 감정의 벽을 뚫지 못한다.

 

섹스가 환희로 이어지려면 정서의 공유가 있어야 한다. 마음이 합쳐지지 않으면 섹스는 동력을 잃는다. 노라는 카미유와의 공허한 관계, 학교에서 당했던 성적 폭력(그녀를 포르노 배우로 몰았던 다수의 폭력도 엄연히 강간과 같은 일이다)의 트라우마로 혼란을 느낀다. 노라는 직접 엠버를 접촉하기 시작한다.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가 엠버와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노라는 기이한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일종의 동질감을 얻게 된다. 그녀는 서서히 엠버와의 섹스를 꿈꾸게 된다.

 

젊은 영혼들의 영혼이 건강해지려면 그 원시성과 생명력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섹스가 한 방법일 수 있다. 몸으로 소통하지 못하면 젊은이들의 정신은 교감이 이어졌다, 끊어졌다를 반복하게 된다. 사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남녀 간의, 혹은 남남 간의, 혹은 여여 간의 섹스가 활성화돼야 한다. 젊은이들의 섹스를 이어가지 못하면, 거기에 자꾸 편견과 억압이 끼어들면, 그 사회는 건강성을 잃는다.

 

 

시스템, 사회, 국가, 공정과 정의라는 말이 강조되는 사회는 기본적으로 위선적이다. 젊은이들이 섹스가 됐든 무엇이 됐든 관계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게 묶이고 그런 연대를 통해 오히려 개별의 정체성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이어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그들로 하여금 괜찮은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런 과정이야말로 젊은이들에게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후회 없는 개인의 인생이 모여야 사회가 후회를 하지 않게 된다.

 

정직한 욕망의 개인이 모여 둘과 셋이 되고 둘과 셋의 건강한 관계가 개인들의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 그 기초적 원동력은 바로 섹스와 같은 젊고 강렬한 원시적 생명력일 수 있다는 점이 70대의 자크 오디아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얘기하려는 것이다. 자크 오디아르가 파리, 13구에서 그 점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 이민자의 후손들(흑인과 아시안)을 지목한 것 역시 프랑스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암시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영화 ‘파리, 13구’에는 후끈 달아오르게 하는 장면들이 많다. 영화 속 인물들의 다양한 섹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이한 깨달음을 얻게 한다. ‘파리, 13구’가 최근 개봉된 극장 영화 중에서 연인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작품인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오동진 ccbbk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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