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행 칼럼] 뗏목을 버려라

2022.06.09 06:00:00 13면

 

 

석파정 미술관에서 본 비구상 화가 이우환의 '선으로부터(From line)'는 너무 낯설어서 잊고 싶은 그림이다. 브레히트가 연극에서 시도했던 낯설게 하기, 생소화효과(소외효과)가 회화에서 통용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잊고 싶을수록 잊혀 지지 않아서 왜 그런지 따져 묻는다. 어디서부턴가 시작된 선이 흔적도 없이 어디론가 사라진 건 무얼 뜻하는 것일까?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선으로부터는 '작은 것의 큼'으로 받아들여질 법 하다. 선은 위에서 아래로 소멸돼 가지만 거꾸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없음 혹은 작은 것에서 큰 것이 생성된다. 도덕경 63장에 나오는 '대소다소(大小多少)'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작고 적은 것이 곧 크고 많은 것이라는 선문답 같은 가르침을 비구상 회화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면 비구상은 경전과 일맥상통하는 예술 장르인지 모른다. 표상할 수 없는 것을 색·면이나 점·선으로 표상하기 때문이다.

 

이우환의 선으로부터는 삶이나 세계, 우주의 한 단면을 압축한다. 크고, 위대하고, 빛나는 것이 실은 작고, 초라하고, 어두운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있어 옳은 것이나 그렇지 않은 것도 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집착은 아무 근거가 없는 고집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좀 더 확장시키면 매 순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압축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나 우리는 그와 정반대로 살아가고 있다. 골방에 처박아 놓고 쓰지도 않는 것을 마치 새것처럼 섬기고 있으며 변해도 너무 변한 현실을 그 낡은 것으로 재단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현실에 맞게 변화한 사람들을 가리켜 유효 기간이 지난 가치를 들이대며 낡은 자들이라고 비난마저 서슴지 않는다.

 

우리가 지적으로나 감각적으로나 게으르지 않다면 지난 대선과 이번 지선 결과를 통해 한국 사회를 어떤 하나의 잣대로 보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지런한 분석이 난망한 것이다. 하지만 선거 과정에서 우리의 변화가 조금 드러났을 뿐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한국 사회는 크게 변해 있었다. 그 실체는 우리를 짓누른 고질적인 획일화의 정반대 지점에 있는 다원주의일 터이다.

 

문 닫는 것을 각오하지 않는 한 상점에 같은 품목이라 하더라도 한두 가지 종류만 진열할 수 없는 사회다. 우리가 그토록 비판해 온 소비 사회가, 우리가 그토록 희생하며 만들어 온 열린 사회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다양성을 역설적으로 뿌리내린 것이다. 변화가 이처럼 굳건한데도 하나의 잣대라는 외눈박이 시각이 건재한 건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비구상 회화 선으로부터는 타고 온 뗏목을 버리라는 경구와 맞닿아 있다. 위쪽에 위치한 선명한 선처럼 뗏목은 지난 시절 매우 눈부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철 지난 것일뿐더러 애물단지다. 그래서 아래쪽으로 사라지는 선처럼 시야에서 멀어져야 한다. 버려야 하는 것이다. 무거운 뗏목을 짊어지고 새로운 현실이라는 산을 어떻게 오를 수 있겠는가?

 

 

 

이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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