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세대교체’를 음모하는 족제비들

2022.06.22 06:00:00 13면

 

 

‘족제비가 대장간에 들어가 쇠붙이 조각을 핥았습니다. 입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족제비는 계속 핥았습니다. 족제비는 피가 쇠붙이 조각에서 나온다고 생각했고, 결국 혀를 못 쓰게 됐습니다.’ 톨스토이의 어린이를 위한 우화 ‘족제비’ 편이에요. 때로는 짧은 우화 속에 깜짝 놀랄 만한 비유나 교훈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죠. 우연히 이 우화를 읽다가 문득 권력에 취한 우리 정치권의 우스꽝스러운 정쟁 놀이 모습이 떠올랐어요.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니 ‘혀’는 곧 정략을 상징하지요. 낫이나 도끼 따위 벼린 권력에 베인 자기 혀에서 나오는 피 맛을 정치의 달콤한 맛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곧 정치꾼들이에요. 야릇한 그 맛에 취한 그들은 날로 혀를 더 요란하게 움직여 요설(妖說)들을 지어내게 되지요. 한번 대장간에 들어가면 혀를 쓰지 못할 때까지 날카로운 쇠붙이를 핥게 되는 이 불가해한 중독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전당대회준비위원회(전준위) 구성을 마치고 본격적인 전대 준비 체제로 들어간 더불어민주당 각 정파가 본격적인 ‘룰 전쟁’을 시작했군요. 지난 6·1지방선거 중에는 ‘586 퇴진론’이 여론을 흔들더니, 이번에는 ‘세대교체론’이 등장했네요. 노역들을 억지로 물러 앉히고, 새로운 세대들을 전면에 내세워야 연패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민주당이 비로소 살아날 것이라는 게 명분이군요. 어차피 ‘명분’을 빌려다 ‘선동’에 써먹는 모략이 정치의 실상이긴 한데, 이건 좀 가당찮아요.

 

흔히들 ‘세대교체’ 하면 떠올리는 인물들이 있어요. 국내에선 지난 1970년 당시 ‘40대 기수론’을 내세우며 돌풍을 일으킨 김영삼(42세)·김대중(46세) 전 대통령들이지요. 세계적으로도 30~40대에 당권을 넘어 국가 최고지도자(대통령·총리)에 오른 마크롱(프랑스 39세)·캐머런(영국 43세)·클린턴(미국 46세)·오바마(미국 48세) 등이 회자하곤 해요. 그런데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그들의 등장은 역사가 불러낸 시대적 현상이지, 결코 ‘기획’의 산물이 아니에요.

 

김민석 의원이 민주당 안의 ‘세대교체론’에 대해 “실력 부족의 불순한 포장”이라고 적확하게 짚어냈군요. 전당대회를 앞두고 조악한 정략 계산기를 두드려가면서 특정 인물에 대해 ‘출마 불가론’을 펼치는 것도, ‘세대교체’라는 사탕발림을 내세우는 것도,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투표 반영 비율을 놓고 입씨름을 벌이는 것도 다 ‘실력 부족의 불순한 포장’으로 읽혀요.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그런 구상유취한 주장일랑 다 버리고, 누구든 다 나와서 당당하게 실력으로 겨루는 게 옳지 않을까요? 민주당에 정말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면, 그게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라면 어떻게든 일어나게 돼 있어요. 날카로운 권력 쇠붙이를 무리하게 핥다가 혀를 베여 흘리는 자기의 피 맛에 취한 딱한 족제비들이 대장간에 즐비하군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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