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 칼럼] 우리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2022.06.28 06:00:00 13면

 

개봉과 동시에 엄청 화제를 모을 것이 확실히 되어 보이는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에는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주인공 형사는 자꾸 자신 앞에 용의자가 돼 나타나는 여자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내가 그렇게 만만합니까?” 이 대사는 이제 여기저기서 패러디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여자의 대답은 이거였다. “내가 그렇게 나쁩니까?” 

 

남자 형사의 저 대사를 지자체장들에게 해주고 싶다. 지방자치단체장이 되면, 특히 새로 되고 나면, 늘 만만한 게 영화제인 모양이다. 이런저런 영화제를 만들겠다, 혹은 만들어 달라 등등 이쪽 전문가들에게 요구와 부탁을 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영화제 하면 그저 극장에 영화를 ‘갖다 붙이는 행위’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거, 돈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오? 얼마면 된다는 거요, 식이다. 문제는 영화제가 그렇게 만만한 퍼포먼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극장에 영화를 갖다 붙이는 것만으로는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가당치 않은 일이다. 영화제를 돈만 가지고 할 생각이라면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이다.

 

수없이 영화제를 해 온 사람으로서 그럴 때마다 지자체장 당사자에게 거나 관련 공무원에게 분명히 경고성 얘기를 건넨다. 영화제는 한번 시작하면 ‘빽도’가 불가능하다, 한번 멈추거나 연기하는 순간 중단되는 것이다, 대중들에게 영화제란 존재를 알리기까지 최소한 3년의 시간이 걸린다, 길게는 5년까지 걸린다, 그걸 감당할 수 있겠는가. 무엇보다 단체장의 임기는 4년이다. 혹시 선거에서 지고 단체장이 교체된다 하더라도 지속 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겠는가 등등이다. 대체로 초기에는 모든 걸 호언장담한다. 그리고 많게는 수십 억, 아무리 적어도 10억 내외를 투여해 첫 해 영화제를 시작한다. 그리고 대체로 3년이 못 가서, 혹은 그 언저리에 사단이 난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현재 강릉국제영화제다. 이 영화제에 대해서는 신임 시장이 선거 운동 당시부터 아예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매년 10월 말 혹은 11월 초에 열리는 이 영화제는 지난해까지 3회를 했으며 예산은 매년 30여 억원 가까이 투입돼 왔다. 지금 폐지한다면 백억 원 가까이를 허공에 날리는 셈이다. 영화제를 단체장의 취향에 따라, 정치적 의도에 따라 만들었다 없앴다 하는 식으로 하려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영화제 자체를 우습게 안 결과라느니(영화제를 하려면 수십, 수백 편의 영화를 사전에 검토하고 일일이 저작권 이슈를 해소하고, 돈을 들여 수급을 해서는, 한 편 한 편 번역과 자막 작업을 해야 한다. 그걸 번인으로 할 때가 있고 슈팅 기법으로 자막을 할 때가 있다. 그런 것도 결정해야 한다. 번인은 스크린 안에 자막을 심는 기술이다.) 영화인들에 대한 모욕적인 행태라느니(한번 씹고 버리는 껌처럼 자신의 정치적 홍보에만 활용하려고 하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기에도 지쳤다. 그냥 막대한 예산 낭비를 지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이냐의 얘기만 하고 싶다. 다 지역민들이 세금으로 낸 것, 국민이 세금으로 낸 것으로 예산을 충당했고 그 돈이 헛되이 쓰인 결과가 됐다면 결국 국민과 지역민들만 희생이 된 꼴이기 때문이다.

 

영화제를 열어서 외부인사들, 배우들, 연예인들을 초청하려면 숙박과 교통이라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야 한다. 이 말은 역으로 얘기하면 영화제를 하면 지역의 숙박시설, 교통 인프라가 확충되고 발달할 수 있는 계기도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느 쪽이 먼저 돼야 한다고 주장할 필요는 없다. 한쪽이 한쪽을 자극시키고 결과적으로 산업이 확장되는 형태로 나아가면 된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한 전략적 검토 없이 마구잡이로 일단 영화제를 유치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다. 그와 동시에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문가의 얘기를 귀담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전문가에게 일을 맡기지 않으려고 한다. 앞에서는 네네 하면서도 뒤에서는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된다는 소리를 반복한다. 그렇게 충돌과 갈등을 반복하고 있는 영화제가 현재 전국적으로 270개가 넘는다. 발상의 전환, 의식의 전환을 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한국에 영화제가 많은 이유는 극장 환경 때문이다. 국내 극장에서는 오로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상업영화밖에 볼 수가 없다. 예술영화, 비상업영화, 독립영화는 오로지 영화제에서 밖에 볼 수가 없다. 영화제가 많아진 원초적인 이유는 극장 문화의 균형이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이걸 수정하고 복원하면 영화제의 수도 자연스럽게 정상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

 

영화제가 복무해야 할 것은 두 가지 방향이다. 하나는 중국의 시장 의존도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시장을 개발해야 하는데 6억 5000만 명에 이르는 아세안(ASEAN) 10개국 만한 곳이 없다. 전 정부의 新남방정책은 윤석열 정부 들어 가차 없이 폐기됐다. 영화계 입장에서 보면, 실로 한심하고 어리석은 일이다. 복무해야 할 두 번째 방향은 철저하게 지역화하고 소규모화 하라는 것이다. 전국 단위의 영화제는 부산과 전주, 부천 정도로 됐다. 다른 영화제들은 공연히 ‘국제’ 소리 붙이며 몸집만 키울 필요가 없다. 과도한 욕망이다. 지역에 맞는 콘셉트로 지역 축제로 만들어 내되 콘셉트도 특색 있게 좁힐 필요가 있다. 날자도 줄이고 편수도 줄여서 예산 역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맞다. 수십 억을 들인다 한들 스태프들 월급은 거의 최저 수준을 밑돌 때가 많다. 그건 실로 괴이한 일이다. 

 

하여 영화제를 만들겠다고 하는 단체장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 정말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한편으로는 현재 영화제를 없애겠다고 발 벗고 나서 있는 시장이나 군수, 혹은 시의회 의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가 그렇게 만만하다고 생각하는가? 하기사 대통령이 EU가 아니라 NATO에 가서 경제실리외교를 하고 돌아오겠다고 하는 현실이니. 실로 자괴스러운 나날이다. 할 말이 없다.

오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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