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가장 소중히 여겨야 하는 사회적 자본은 신의가 첫째로 꼽힐 터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국가 지도자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 신의이다. 우리 사회는 나라를 책임지겠다는 사람이 신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이는 곧잘 사회적 갈등과 불신을 키운다. 예부터 왕과 신하, 백성 상호 간, 스승과 제자, 부부 사이, 부자 관계, 친구 사이에서 가장 중시된 덕목은 가장 중요한 도덕적 기준이자 판단 근거이었다.
춘추전국시대 秦 나라의 실력자 公孫 앙(鞅)은 위 나라에서 사이좋게 지냈던 公子 앙(卬)을 전쟁터에서 상대국 장수로 맞는다. 하지만 공자 앙에게 과거 인연을 미끼로 서로 싸우지 말고 동시에 병력을 철수시키자며 거짓 화친을 제의한다. 그는 이에 속은 공자 앙을 불러내 붙잡아 죽이고 전투를 승리로 이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신의는 무너진다. 새로 등극한 왕이 ‘믿음이 안가는 인물’이라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이다. 위기를 직감한 그는 다시 위 나라로 피신했으나 하급 현령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한다. “그대는 친구를 배신한 사람이니 내가 당신을 챙겨주어야 할 도의란 찾을 수 없다”고 내쫓은 것이다. 속임수로 권력에 오른 자의 배신행위가 낳은 인과응보이다. 권력자들은 주로 사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배신하곤 한다. 무릇 사익에 빠진 자들은 처음에는 서로 돕지만 나중에는 미워하다가 결국 몰락의 길을 걷고 마는 법이다.
신의와 함께 지혜가 공직자의 소중한 덕목이라고 역설하는 역사적 사례도 넘쳐난다. 나라를 망칠 군주는 겉보기에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고, 간신 역시 충신처럼 위장하니 제대로 사람 됨됨이를 살필 일이다. 역사는 지혜를 갖춘 권력자의 작은 善은 큰 선을 불러오지만 어리석은 자의 작은 악은 큰 재앙을 불러온다고 가르친다. 중국의 西周 왕비 포사가 나라를 망친 것도 유왕이 지혜를 못 갖추고 그녀의 작은 즐거움에 집착했던 탓이다. 결국 나라는 망해 삼공(三公)과 구경(九卿)의 신하들이 모두 달아나 버리고 유왕 자신도 참극을 당하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지난 3월25일자 '공동선' 참조)
오늘의 대한민국은 신뢰의 위기를 맞았다. 윤석열 자신이 전임 대통령에게 검찰 개혁을 철석같이 약속해놓고 이를 배신해 최고 권력에 오른 사람이다. 나아가 검찰 조직을 진두 지휘해 개혁을 추진하는 인사를 도륙을 내더니 대통령이 된 이후는 아예 검찰공화국의 건설에 몰두하는 듯하다. 또한 그 부인은 엉터리 논문에 허위 이력,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 도덕적 기준을 넘어 중대 범죄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남편의 ‘법과 원칙’ 적용 기준에서는 예외인 듯하다. 도덕적 틀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새 정부에서 신뢰는 누구에게 구할까?
개인이나 법인, 특히 모든 권력은 유한한 생명체이다. 언젠가는 흥망성쇠를 겪게 마련이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시민들의 어깨가 이제 조금 더 무거워졌다. 기본적 신의마저 저버린 불의한 권력에 맞서는 일이 우리 역사 앞에 놓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