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앞 세대는 죽지 않는다. 사라질 뿐이다.

2022.06.30 10:56:47

73. 탑 건: 매버릭 - 조셉 코신스키

 

콜 사인 아이스 맨(발 킬머)과 매버릭(톰 크루즈)은 탑 건 훈련 시절 엄청난 라이벌 관계였으나 지금은 다 지나간 얘기일 뿐이다. 아이스 맨은 별 넷인 4성 장군 제독이 됐고 매버릭은 여전히 대령에서 진급이 멈춰 있다. 괴짜(매버릭)라는 닉네임처럼 온갖 말썽과 구설수, 군조직에 반하는 행동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는 파일럿 사이에서 여전히 전설이다. 아이스 맨은 그런 매버릭을 파일럿의 교관으로 불러들여, 위험한 대테러 작전에 투입시키려 한다. 아이스 맨은 후두암으로 죽어 간다. 군 내부에서 진퇴양난에 처한 매버릭은 그를 만난다.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아이스 맨은 그에게 컴퓨터 키보드로 이렇게 쓴다. “It’s time to let go”. 흘러가게 해, 이제 그냥 놔 줘, 그냥 내버려 둬, 뭐 그런 뜻일 것이다.

 

둘은 오랜 세월을 라이벌이든 친구이든 교감해 왔고 매버릭은 아이스 맨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스 맨이 하늘에서 최고의 파일럿은 누구냐고 묻자 매버릭은 지금처럼 좋은 분위기를 망치지 말자고 한다. 둘은 뜨겁게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는다. 늙어 가는 두 남자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스 맨을 연기한 발 킬머는 실제 후두암으로 죽어 간다. 영화 ‘탑 건 :매버릭’의 이 장면은 할리우드 안에서 오랫동안 두 배우의 실제 관계를 영화 안의 이야기로 이중화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 마치 이렇게 대화를 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지금까지 누가 가장 훌륭한 배우였지?’, ‘지금 와서 왜 그런 얘기를 하고 그러나 이 사람아, 그리고 당연한 걸 가지고 왜 물어?’. 뭐 그런 식의 내용일 수 있다.

 

발 킬머는 1959년생이고 톰 크루즈는 1962년생이다. 발 킬머는 곧 죽을 것이고 톰 크루즈는 더 이상 액션 영화를 하지 못하거나 줄여 나갈 것이다. 배우도 어쩔 수 없이 늙어 가되, 두 사람은 그나마 자신들의 마지막을 잘 준비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런 점이 사람들의 가슴을 ‘쿵’ 내리친다.

 

 

‘탑 건: 매버릭’은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역작이 돼 나타난 속편이다. 아무도 이 영화에 이런 감흥이 담겨 있으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이따위’ 군사 영화에 인간관계에 대한 이성적이고 지성적인 느낌을 담아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마도 이 영화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뛰어난 속편이라는 평가로 기록될 것이다. 속편 영화 중 가장 흥행을 많이 한 작품으로도 기록될 것이다. 실제로 톰 크루즈 주연작 중 가장 관객을 많이 모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84년에 나왔던 1편 ‘탑 건’은 레이건 시대, ‘강한 미국’을 표방하고 그런 체제를 홍보하기 위한 일조의 프로파간다용 군사 영화였다. 다분히 ‘쓰레기’였다. 무엇보다 클리셰(cliché) 덩어리였다. 비행 훈련학교의 젊은이들의 꿈과 야망, 사랑을 그린 내용이었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할리우드가 군대를 소재로 무수하게 쏟아 낸 작품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리처드 기어 주연의 ‘사관과 신사’와 ‘탑 건’ 1편의 내용을 헷갈려 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을 정도다.

 

‘탑 건: 매버릭’은 ‘탑 건’의 유일한 장점인 캐릭터만 가지고 이야기와 영화의 전체 사이즈를 확장시킨다. 무엇보다 이들 모두가 성숙하고 늙었으며 세상의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달아 가는 인물들로 치환시킨 것이야말로 이번 속편의 최대 매력이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첨단화되고 사회의 시스템과 자본의 힘이 커졌다 한들 지난 30년간 우리가 깨달은 것은 그게 과연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했냐는 것이다. 군사적으로 최강 국가가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미국이 그래서 과연 최고의 나라가 됐느냐는 것이다. 그 같은 성찰과 깨달음의 시그널을 ‘탑 건: 매버릭’은 여기저기 심어 놓는다.

 

매버릭의 능력은 높이 사지만 그의 군 생활 태도에 화가 나 있는 또 다른 해군 장성인 케인 소장(에드 해리스)은 복잡한 표정과 심경으로 매버릭에게 이렇게 소리친다. “이제 파일럿은 필요가 없는 시대야. 그런 시대가 바로 코앞에 왔다고!” 실제로 미국은 현재 모든 비행 공습을 드론을 통해 실행한다. 전투기 조종사가 실제로 비행기에 탑승해 미사일을 싣고 가서는 목표 지점에 폭탄을 투하하거나 발사하는 식의 전쟁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영화 ‘아이 인 더 스카이’, ‘본 레거시’).

 

그러니 케인 소장의 말은 예언이 아니고 현실이다. 전투기 조종사 간의 공중전투 따위도 사라진 지 오래다. 때문에 이제 그런 훈련, 곧 공중전 훈련 따위는 요구되는 시대가 아니다. 탑 건은 공룡 같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케인 소장의 그 같은 호언장담을 묵묵히 듣던 매버릭은 뒤돌아서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Not Today”, (그래도) 오늘은 아니야. 당장은 아니야라는 뜻이다.

 

 

성숙한 스토리 라인만으로 ‘전투기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군사 영화에는 전투가 나와야 하고 전투기 영화에는 공중전이 나와야 한다. 영화 ‘탑 건: 매버릭’은 그 라스트 미션을 수행해 낸다.

 

어딘가(로 특정하지 않은 것, 어떤 나라나 어떤 집단을 특정하지 않은 것도 이 영화가 꽤나 영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매설돼 있는 핵탄두를 파괴하기 위한 작전과 그 공중의 스펙터클이 영화 전체를 휘감는다. CG의 유혹을 버리고 ‘육질의’ 촬영, 공중의 높낮이와 속도는 조정했을지언정 실제 비행하는 과정을 찍고 연기한, 스턴트 액션의 난이도야말로 이번 영화가 지닌 영화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승부수이다.

 

톰 크루즈는 이번 작품에서도 위험한 액션 연기를 마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가 됐든, 사회가 됐든, 그것이 나라가 됐든 인간의 몸을 써야, 곧 인간 스스로가 직접 나서야 가장 좋은 그림과 모양새가 된다는 것을 스멀스멀 은근히 스며들게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사회가 지수 자본주의(주식과 코인 등)가 되면서 망가졌듯이, 모든 노동 현장에 로봇과 전자 기기가 일상화되면서 노동자들의 삶이 무너졌듯이, 그리하여 인간 스스로의 힘 그 육화(肉化)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 가를 역설한다. 그 노력이 가상하고 눈물겨운 작품이다.

 

 

1980년대의 문화적 코드가 넘쳐난다. 그 시대에 유행한 패션의 아이콘들을 대거 투입한다. 매버릭이 몰고 다니는 가와사키 바이크, 그가 입고 차고 다니는 항공 점퍼와 스위스제 시계 등등이 이른바 ‘덕후’들의 눈을 자극했고 아마도 이 영화 이후 다시 유행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매버릭의 연인 페니(제니퍼 코넬리)가 마지막에 몰고 온 고가의 포르쉐까지는 아니더라도.

 

‘탑 건: 매버릭’은 매력적인 자본의 상품을 즐비하게 진열함으로써 자본주의가 얼마나 괜찮은 건지, 자본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가 사실은 얼마나 선하고 좋은 것인지를 교묘하게 이식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청소년들이 무비판적으로 이 영화를 수용하는 한 정치적으로나, 이념적으로 위험한 작품이기도 하다. 게다가 주인공 매버릭 역의 톰 크루즈는 늘 ‘톰 아저씨’로 불리며 한국을 10회 가까이 내한했다. 그가 가진 마음씨 좋은 아저씨 이미지는 영화로까지 확장되며 미국 제일주의, 선한 미국의 이미지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갖는 정치적 한계이다. 때문에 영화의 매력적인 부분만을 추출해서 볼 수 있는 심미안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탑 건: 매버릭’은 지지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이다. 한 시대의 종언은 좌우를 불문하고, 이념이나 국가의 차이와 상관없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차근차근 진행해 가느냐가 다음 세대의 연착륙을 위해 필요하다는 식의 어른의 깨달음을 얘기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사라질 뿐이다. 맹렬한 반공주의자였던 맥아더가 얘기해서 그 의미가 퇴색했지만 어쩌고저쩌고해도 인생의 역설이 느껴지는 어구이다. 다 그런 것이다. ‘탑 건: 매버릭’은 그 쓸쓸함을 강조한 영화이다. 그 점이 최고점을 받았다.

오동진 ccbbk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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