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인사망사(人事亡事)’의 저주

2022.07.06 06:00:00 13면

 

 

 

수많은 정권교체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정권교체기 인사논란은 의외로 잠잠한 편이에요. 지명된 인물을 놓고 국회 안에서 ‘교통위반 딱지’, ‘표절’, ‘주민등록법 위반’ 등의 문제를 놓고 지지고 볶는 일이 뉴스가 되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어요. 논란 여지가 있는 인물들은 아예 지명되기 어려운 인사시스템 덕분이에요. 그 기능 한복판에 플럼북(Plum Book)이라는 지침서가 있어요.

 

겉표지가 자두색(Plum)이어서 붙인 이름이어서 붙여진 이 지침서의 정식 명칭은 ‘미국 정부 정책 및 지원 직책’이래요. 플럼북에는 연방정부의 장·차관을 비롯한 9000여 개 주요 직위의 명칭, 현직자 이름, 임명 형태, 보수 등급과 직급, 임기 여부, 임기 만료일 등에 관한 인사 정보를 담고 있대요. 상·하원이 인사관리처의 지원을 받아 함께 펴내기 때문에 당리당략이 개입할 여지가 아주 좁다니 참 부러운 시스템인 듯해요.

 

윤석열 대통령이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승겸 합동참모본부 의장 임명을 강행했네요. 정치자금 유용,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자녀 특혜 채용 등 숱한 의혹이 제기된 김승희 복지부 장관 후보는 뭇매를 못 견디고 끝내 자진사퇴를 했군요. 정권이 바뀔 적마다 번번이 벌어지는 정실인사 논란, 망신주기 정쟁은 창피한 후진적 추태예요. ‘국민 눈높이’라는 고상한 수식어를 붙이지만 결국 쩨쩨한 정쟁 놀음, 국력 낭비에 불과해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이명박 정부 때는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출신), 박근혜 정부는 ‘성시경’(성균관대·고시·경기고), 문재인 정부는 ‘캠코더’(대선 캠프·코드인사·더불어민주당) 논란 등이 있었지요. 윤석열 정부의 인사에도 일찌감치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이라는 빨간딱지가 붙어있군요. 알고 보면 이게 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찌꺼기랍니다. 대통령이 결정하는 공직이 알토란 자리 300여 개를 비롯해 최대 1만 개까지 된다고 하거든요.

 

선거에 뛰는 대다수 정치꾼들은 바로 이 전리품을 노리는 일종의 투기꾼들이에요. 애국적 가치관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니 아무리 수준 낮은 후보여도 팬덤으로 뭉쳐 필사적으로 충성경쟁을 벌이는 거지요. “우리 정부에서는 빈틈없이 사람을 발탁했다고 자부한다”는 윤 대통령의 강변을 들으니, 벌써 무소불위의 마법에 걸려든 게 아닌가 걱정이 드네요. 물론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정치환경에서 어쩔 수 없으리라는 짐작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젠 좀 해법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야 정치권 인사들 가슴에 새털만큼의 ‘나라 사랑’이라도 남아있다면 여야가 공유하는, 미국의 플럼북 같은 국가 인재풀(Resource pool)을 만들어봤으면 해요. 매번 저질 투기꾼들의 분탕질로 치닫는 야만적 선거판, 참담한 정부의 인사망사(人事亡事) 저주에서 이젠 제발 좀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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