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휘의 시시비비] ‘비대위’ 공화국의 이면

2022.08.03 06:00:00 13면

 

 

 

감당하기 힘든 패배나 위기를 맞이할 적에 특별한 용단을 보여줌으로써 난관을 헤쳐나가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종종 목도되는 일이지요. 비상의 시기에 비상의 방법을 쓰는 것은 어쩌면 요긴한 지혜일 거예요. 그러나 작금 이 나라 정치에 걸핏하면 등장하는 ‘비대위(비상대책위원회)’ 정치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걸까요?

 

임금이 질병이나 고령으로 정사를 제대로 돌볼 수 없게 될 때 누군가 왕 대신 정사를 돌보는 것을 대리청정(代理聽政)이라고 하지요. 또 임금이 어린 나이로 즉위했을 때 왕대비나 대왕대비가 정사를 돌보던 일을 수렴청정(垂簾聽政)이라고 해요. 그런데 대리청정이나 수렴청정의 이면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추악한 모략들이 수두룩 일어나 나라를 풍전등화로 몰아넣은 역사도 없지 않았어요.

 

지난해 재보궐 선거에서부터 대선·지방선거에서 내리 3연패를 당한 더불어민주당이 ‘비대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다소 납득이 가는 일이에요.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80여 일 만에 ‘비대위 체제’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을 정도로 집권 여당 국민의힘이 난파 직전에 몰린 일은 희한한 사태예요. 더욱이 연일 쏟아지는 내홍 파열음의 진원이 당권을 장악하기 위한 아귀다툼이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로군요.

 

이 야릇한 현상의 속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몇몇 야심가들의 복잡한 행태가 보여요. 달콤한 권력의 맛에 취한 이 사람들 가운데 빌미를 제공하는 핵심은 역시 ‘6개월 당원권 정지’를 당하고 괴짜 혁명가 행각을 지속하는 이준석 대표예요. 기존 여의도 정치 문법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그의 낯선 정치 문법이 국민의힘 내부분열의 결정적 불씨이지요.

 

거창한 대의명분이나 이데올로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권력욕을 숨긴 채로 표와 인기를 위한 선동술을 구사하는 게 전통적인 정치 문법이에요. 유창한 어휘력과 논리만으로 무장하고 뾰족한 논쟁을 일삼는 이준석의 정치는 좀처럼 소화하기 힘든 돌연변이이지요. 별난 정치행태가 기성 정치판에 위협이 되어 스스로를 곤궁으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에요.

 

각설하고, 건듯하면 ‘비대위’라는 이름으로 ‘구태정치 세탁 쇼’를 하는 정치꾼들의 행태에 대해서 이젠 좀 달리 생각해봐야 해요. 돌이켜보면 정치권에 자주 등장하는 ‘비대위’가 우리 정치를 정말로 바꿔낸 사례는 없어요. 국민 앞에 천지개벽을 일궈낼 것처럼 연출하는 일종의 화장술, 분장술은 될지언정 온 국민의 소원인 참다운 정치개혁을 일궈낸 진정한 혁신은 아니었거든요.

 

당이 위태로워지면 ‘비대위’라는 이름으로 변장하고 나타나는 그 뻔뻔한 대리청정, 수렴청정 ‘쇼’에 번번이 속아 넘어가는 우리의 한심한 민도(民度)부터 처절하게 반성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온 국민이 넌더리를 내는 썩은 정치를 한꺼번에 청산해낼 제대로 된 ‘정치개혁’ 결단이 아니라면 이젠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해요. 그렇지 않나요?

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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