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사색] 평양 단고기

2022.08.08 06:00:00 13면

 

 

2006년 5월, 북한에 밤나무 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을 협의하는 기독교계 단체와 동행하여 평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이 과장님, 불안하지 않아요?”

 

평양 양각도호텔 2층 식당에서 가진 아침식사시간, 일행 중 한 명인 원로 목사님이 질문을 던졌다.

 

“왜요?”

 

아마도 북한의 종교정책, 6·25전쟁 때의 경험 등 평생 ‘공산당’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아 온, 여든을 바라보는 노(老) 목사님께선 평양에서의 잠자리가 영 불편했던 모양이다.

 

“목사님, 여기 평양은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해도 돼요.” 남북간에 상대방 지역을 방문하는 인사들의 신변 안전은 물론 무사 귀환을 보장하는 약속이 잘 지켜진다는 사실을 아는 나로서는 북한에서 체류하는 것이 불안할 이유가 없지만, 처음 북한을 방문하는 목사님으로서는 몹시 불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미소로 대답했다. 그리고 북쪽 사람들이 남쪽에 왔을 때 우리가 그들의 안전을 위해 하는 일 등 이런저런 사례를 들어 설명하자, 노 목사님은 조금은 안심이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고려호텔 옆에 있는 단고기 식당에서 열린 만찬, 당연히 메뉴는 단고기(보신탕)였다. 남쪽 사람들이 평양을 방문할 때 단고기를 찾는 이들은 대개 안산관, 통일거리 그리고 고려호텔의 단고기 식당에서 북쪽의 보신탕 맛을 보게 된다. 남쪽과 큰 차이는 없지만 다리, 배받이, 갈비 등 부위별 코스로 요리가 나오고 마지막에 진국 탕이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거의 모든 이들이 맛을 극찬한다. 가격은 남쪽과 비교하면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저렴한 가격. 우리 노 목사님도 단고기를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평소 얘기가 많더니 단고기가 나오니까 말 수가 줄어들면서 맛의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목사님! 단고기 맛있어요? 남쪽과 비교해서 맛이 어때요?”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고 웃으면서 계속 들고 있던 갈비를 뜯었다. 먹는 시간에는 정치도 이념도 필요 없다. 즐겁게 서로의 생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비슷한 것에는 공감하고 차이가 있는 것은 이해하면서 웃음꽃을 활짝 피웠다.

 

“목사님! 그런데 천당에도 단고기가 있나요?” 갑자기 생뚱맞은 내 질문에 노 목사님께서 당황하며 잠시 머뭇거리더니 하시는 말씀,

 

“나도 안 가봐서 몰라!”

 

남과 북, 그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파안대소! 참 즐거웠다.

 

찌는 듯한 삼복더위, 답답한 남북관계, 남북간 만남의 추억을 떠 올리며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다시 만나야 한다는 우리 민족의 숙명적 명제를 생각한다. (필자의 졸저(拙著) 『그래도 우린 다시 만나야 한다』 중에서 발췌)

이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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