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윤의 좌충우돌] 죽음을 기억하라

2022.08.11 06:00:00 13면

 

시아버지가 부쩍 노쇠해지셨다. 식욕이 줄고 활동량이 없으시더니 무기력하게 누워만 계셨다. 은퇴 후 소일거리 없이 지내신지 15년, 무심한 세월에 기력마저 잃으셨다. 병원에 모시고 가서 혈액검사를 시작으로 뇌, 위, 전립선, 대장까지 검사해 봤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존엄한 노후에 대해 곧잘 말해왔지만 정작 현실의 어려움에 부딪치자 자식으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툴고 헤매기만 했다.

 

그렇게 한 달. 한국 의료와 복지의 “현실”을 체감했다. 그것은 허점과 오류, 맹탕 수준의 노후였다. 엄격하고 자존심 센 아버지 당신이 무력한 존재가 되면서부터 노년의 삶이란 대체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 거동을 못하시게 된 아버지를 위해 노인용품을 하나씩 장만하면서 자식들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서러운 사연을 짐작해본다. 청년 시절 빛나던 청춘이 풍화(風化)되어 재처럼 남고 장년의 기세도 추억으로 아른거릴 삶.

 

가난에 찌들어 눈빛도 바랬고

온 얼굴 가득 주름살 오글쪼글

지하철 공짜로 타는 것 말고는

늙어서 받은 것 아무것도 없네

/김광규, 쪽방 할머니

 

한국 70대 노인 빈곤율은 전체 노인의 절반에 이르고 자살률은 세계 1위를 기록한다. 노인 자살의 주된 이유는 경제적 빈곤이다. 더는 다른 가능성에 대한 희망은 바랄 수도 없이 늙음을 마주하는 이들은 폐지를 줍거나 전철에서 소일하며 노후를 보낸다. 그나마 기초노령연금이라도 있어 숨 쉴 틈이라도 생겼다지만 여전히 지하철을 공짜로 타는 것이 늙어서 받는 현실적인 복지 혜택의 거의 전부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는 노년도 있지만 노후가 대체로 슬픈 이 나라에는 “짤짤이 순례길”도 있다. 종교 단체가 요일과 시간을 정해 나눠주는 달랑 500원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길을 걷는데 그렇게 교회와 성당을 반나절 돌아 모은 몇 천원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가난한 노인들은 스스로 자조 섞인 말로 짤짤이 순례길이라 부른다고 한다. 존엄한 삶은 고사하고 목숨을 부지해야할 절박하고 서글픈 현실에 서 있는 존재들의 성지길인 것이다.

 

시아버지는 앞서 말한 유형에는 속하지 않는 노인이었다. 무기력할지라도 삶 언저리에서 늙어감에 견디며 버티던 분이셨다. 그런 분이 끝끝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한 채 한 달여 만에 돌아가셨고 쓸쓸한 노년의 급작스러운 죽음은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인간의 젊음은 유한하며 죽음은 필연적이라는 당연한 이치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노화와 죽음, 법칙은 단순한데 복잡한 심경은 좀처럼 다스려지지 않았다. 그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는 낱말이 떠올랐다.

 

오늘 네가 승리했더라도 기쁨에 취하지 말고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뜻을 지녔다는 라틴어가 삶에 죽음을 ‘각인’하라는 것처럼 들렸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삶에 각인하라.

박영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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