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온고지신] 안중근

2022.08.24 06:00:00 13면

 

김 훈의 '하얼빈'을 단숨에 읽었다. 먼저 우리 애들과 그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요즈음 기쁜 일이라고는 없는 또래들에게 한 나절을 투자하여 이보다 더 짭짤한 소득은 없을 거라면서 권하고 싶다. 남녀노소 두루 읽으면 좋겠다. 자신있게 권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잘 모르던 안중근이 지금 하얼빈에서 이토를 정조준하고 있다. 

 

요즈음 부쩍 안중근 의사를 많이 생각했다. 일본이 최근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배상 등 한일관계의 오랜 쟁점사안들을 놓고 마치 조폭행태로 일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누가 보더라도 일본의 그 더러운 전략에 말려들고 있다. 걱정이 태산이다. 이 나라가 석 달만에 풍전등화 신세가 된 거다. 

 

"조선이 평화와 독립을 동시에 누리고 싶으면 길은 순순히 제국의 틀 안으로 들어와 그저 따르면 된다. 그러면 '열복'(기쁠 悅, 복福)을 받는다." 이토 히로부미의 신념이었다. 그는 그 잘못된 믿음으로 그렇게 간거다. 이토는 동아시아전역에 '열복'을 파는 장사치였고, 사기꾼이었으며, 제거해야 마땅한 악마의 수괴였다. 정치는 시공을 초월하여 '작용-반작용'의 법칙이 작동하는 영역이다. 임계치를 넘으면 솥뚜껑이 비행한다.

 

'열복'! 육십 평생 첨 접하는 어휘다. 나쁜 놈이 좋은 언어를 선점하는 것이 또 하나의 정치기술이다. 이 기술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만큼 위력적이다. 대표적으로 전두환의 정의, 이명박의 정직 따위가 정치의 그 파렴치한 속성의 증거들이다. 그 말장난은 다양한 비유와 웅변으로 진실의 옷을 입는다.

 

악마가 '열복타령'을 하면 이처럼 우습고 역겨운 당근이 된다. 이토는 그 미끼를 흔들면서 한편에서는 보란듯이 늙은이, 어린이, 임산부, 불구자, 개, 고양이, 말, 당나귀까지 닥치는대로 죽였다. 민가로 도망쳤다가 잡힌 군인들은 그 자리에서 파리처럼 죽였다. 순종의 군대해산 조치에 반대하여 들고 일어난 군인들과 협조한 시민들의 시체들을 모아 방벽을 쌓아놓고, 그 더미 뒤에 기관총좌를 앉혔다. 이것이 이토 히로부미와 일제가 구상했던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의 실체였다.

 

"안중근은 일본검사의 첫 신문에서 자신의 직업을 '포수'라 했다. 재판 때는 판사에게 '무직'이라고 말했다. 그의 동지이며 공범인 우덕순은 직업이 '담배팔이'라고 일관되게 말했다. 포수, 무직, 담배팔이! 이 세 단어 의 순수성이 이 소설을 쓰는 동안 등대처럼 나를 인도해주었다." 작가의 말이다.

 

명함 큰 놈들은 대개 탐욕적이다. 이토의 저 악마성을 에너지로 쓰면서 거들먹거리며 활보하다가 끝내 하얼빈에서 막을 내린다. 이 시대 일본 주류의 회의실 정중앙에는 이토가 앉아있다. 이 정부는 이토를 상관으로 여기고 맘껏 저자세를 취한다. 망국의 조짐이 보이면, 항상 포수와 담배팔이와 허다한 무직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저항하며 구국의 전사가 된다. 큰 법칙이다.

 

오세훈
저작권자 © 경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흥덕4로 15번길 3-11 (영덕동 1111-2) 경기신문사 | 대표전화 : 031) 268-8114 | 팩스 : 031) 268-8393 | 청소년보호책임자 : 엄순엽 법인명 : ㈜경기신문사 | 제호 : 경기신문 | 등록번호 : 경기 가 00006 | 등록일 : 2002-04-06 | 발행일 : 2002-04-06 | 발행인·편집인 : 김대훈 | ISSN 2635-9790 경기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 2020 경기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