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수의  월드뮤직 속 세계사]  ‘질투의 나라, 덴마크 1’

2022.08.29 06:00:00 29면

 

 

소년은 통창 앞 의자에 혼자 앉아있다. 책을 떨군 것도 모른 채 한 시간 넘도록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창 너머 하늘을 찌르고 선 메타세콰이어 나무들을 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무 사이에 걸린 구름일까, 나무들 뒤 주차장을 오가는 차와 사람들일까.

 

소년의 시선을 이끈 것은 마음, 영혼, 무의식같은 그의 내면일 것이다. 어린 날, 그가 점령했던 왕국의 일용할 양식이던 것들. 웃음소리와 고집과 도발로 융성했던 그 아름다운 나라를 찬탈한 이는 누구였을까.

 

소년은 최근 자퇴한 고교 2년생이었던 내 아들이다. ‘멍 때리고 있던 아들’ 그 아들의 뒷모습에 감동해 ‘멍 때리고 있던 나’, 모자(母子)의 생경한 모습은 어제 헤이리 내 작업실에서의 실황이고. 입시지옥에 영육이 말라가는 것을 보다 못한 남편의 권유가 시작이었고 아들의 빠른 수용으로 일사천리 결정된 자퇴 후, 한 달이 지났다.

 

아들은 다시 깔깔 웃기 시작했고, 말이 많아졌고, 없었던 애교(?)까지 부린다. 숙제와 시험에서 해방돼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아들 뒤에서 난데없이(물론 동의했지만) 그의 삼시세끼 해결이라는 숙제와 시험을 받은 나는......소리도 못내는 비명을 지른다. 아이들 키우며 한숨과 함께 튀어나오곤 했던 말이 더 잦아졌다.

 

‘아, 덴마크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더라면!’

 

‘덴마크 같은 나라’ 할 때 제일 먼저 ‘국민 행복지수 세계 최고’를 떠올리는 이가 많을 것이다. 덴마크를 상징하는 바이킹, 레고, 동화 작가 안데르센 등이 행복나라에 환상을 더한다. 아이 둘 키우면서 인간성장에 고민이 깊었던 나는, 덴마크하면 그룬투비(N.F.S Grundtvig)를 빼놓을 수 없다. 시험 없고, 학원 없고, 입시지옥 없다는, 그 꿈같은 덴마크 학교의 초석을 놓은 이가 그룬투비다.

 

그룬투비가 덴마크 교육에 혁신을 일으킨 시기는 안데르센이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썼던 시기다. 19세기의 덴마크는 실제 소년, 소녀들이 학교는커녕 빵 값을 벌기 위해 거리를 떠돌던, 전국민이 빈곤에 시달리던 시기였다.(성냥팔이 소녀의 모델은 안데르센 어머니다) 

 

목사였던 그룬투비는 암울한 덴마크를 일으켜 세울 힘은 교육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선택된 소수만 다닐 수 있었던 학교 제도 , 그 교육도 ‘교사의 일방적 주입식 교육’이라는 것이 반기를 들고 ‘폴케호이스콜레’라는 신교육기관을 만들었다. 우리 말로 ‘평민대학‘ ’자유학교’ 정도의 의미인 폴케호이스콜레에는 성별, 연령, 계급, 종교에 관계없이 입학할 수 있게 했고 경쟁과 이기심을 부르는 시험을 없애고 공동체 프로그램을 강화했다.

 

’경쟁보다는 협동’ ‘ 개인의 이익보다 공공의 행복’을 중요시한 폴케호이스콜레의 교육철학은 그대로 이어져 오늘의 덴마크 공교육을 꽃피우게 하는데 크게 이바지 했다.

 

오늘 아침도 도서관에 간다는 아들을 위해 두 개의 도시락을 싸면서 부모에게 이 고생을 시키지 않는 덴마크 교육을 부러워한다. 아니, 질투한다.

 

기막히다. 이 와중에 월드뮤직 채널에서 덴마크 작곡가 자콥 게이드(Jacob Gade) 작곡의 탱고곡 ‘Jealousy(질투)’가 흐른다. 이런 걸 동시성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의 과한 감정이입인가.

 

(인터넷 창에서 www.월드뮤직. 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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