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식 칼럼] 아베의 유산, 소프트파워

2022.08.30 06:00:00 13면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아베 개인을 찬양하고자 함이 아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아베가 이룬 업적을 평가하고 이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함이다. 잠시 민족적 감정을 뒤로 하고 객관적으로 아베를 바라보도록 노력해 보자.

 

아베는 일본 평화헌법의 개정과 안보 강화에 노력한 정치가로서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아베의 업적은 국내정치 분야보다 국제정치 분야에서 더 두드러진다. 아베는 일본의 지경·지정학적 위상을 재구축함으로써 일본의 대외 영향력 향상에 기여하였다. 회자되는 대표적 사례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쿼드 및 인도-태평양 비전이다.

 

아베는 CPTPP의 침몰 위기를 극복한 선장이다. 2017년 미국의 일방적으로 탈퇴로 인하여 붕괴의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리더십을 발휘하여 CPTPP를 성공적으로 출범시켰다. CPTPP는 중국이 준수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무역 개방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1년 중국이 가입을 신청하는 의외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만장일치제이므로 일본은 중국의 가입을 거부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이 중국의 국내 거래 등 관행을 CPTPP 기준에 맞추어 개혁하도록 요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놀라운 지경학적 역전이다.

 

아베는 쿼드 및 인도-태평양전략의 원조다. 쿼드는 2004년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연안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아세안 국가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미국, 호주, 인도 등과 협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2006년 아베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질서 유지를 위한 국제정치협의체의 설립을, 2012년 ‘민주주의 안보 다이아몬드’ 개념과 함께 쿼드를 그 중심에 두는 구상을, 그리고 2015년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전략’을 발표하였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핵심 대외 전략으로서 인도-태평양전략을 채택한 이후 아베의 제안은 빛을 발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상 아베의 두 가지 업적의 구체적 성과에 대하여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 과정에서 획득한 일본 소프트파워의 뚜렷한 신장이다. CPTPP와 인도-태평양전략의 출범 과정에서 보여준 룰 제정자 또는 조정자로서 역량은 일본의 소프트파워를 표상한다. 소프트파워는 국제무대에서 네트워크파워를 행사할 수 있게 한다. 네트워크파워는 군사력 또는 경제력과 같은 하드파워에서가 아니라 이를 초월하여 작동하는 네트워크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역량에서 나온다.

 

한국이 소프트파워와 네트워크파워를 강화하려면 대외 전략의 수준을 기존의 수동적·일방적·양자적 차원에서 능동적·쌍방적·다자적 차원으로 한 단계 더 높여 나가야 한다. 소프트파워와 네트워크파워는 초선진 리더국 그룹에 진입하는데 필요한 핵심 역량이다.

임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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